ESSEC 비즈니스 스쿨의 줄리안 살라나브 교수는 많은 기업이 AI를 업무 자동화 차원에서만 바라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조직 전체의 협업 방식과 의사결정 구조를 재설계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GM이 1970년대에 로봇을 단순 자동화 도구로 도입한 반면, 도요타는 같은 기술을 활용해 생산 시스템 전체를 재설계했던 사례를 들며 “AI의 영향을 개별 업무 차원이 아닌 시스템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단순한 기술 도입 여부보다 ‘어떻게 조직을 재설계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그는 AI를 ‘기술적 문제’가 아닌 ‘적응(Adaptive) 과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살라나브 교수는 기술적 문제에는 전문가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지만, AI처럼 명확한 인과관계가 없는 적응 과제에서는 조직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는 실험과 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리더십에서 요구되던 ‘지시와 통제’보다 ‘조정과 참여’ 중심의 리더십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또한 살라나브 교수는 “지식이 풍부해지는 세상에서는 지식 자체가 더 이상 핵심 가치가 될 수 없다”며 AI 시대 핵심 역량으로 ▲호기심 ▲큐레이션 ▲판단력을 제시했다. 그는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답을 골라 실행에 옮길지를 결정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발표자로 나선 강효석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는 AI가 업무 생산성과 조직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실증적인 관점에서 설명했다. 그는 “AI는 업무의 0~80%를 빠르게 처리하면서 생산 비용을 크게 낮추고 있다”며 “그러나 실제 경쟁력은 남은 20%를 어떻게 완성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특히 많은 사용자가 AI 결과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그대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인간의 개입과 검증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AI 도입이 조직 구조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그는 “기존의 기능 중심 조직은 점차 해체되고 있으며, 문제 해결 중심의 유연한 팀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며 “디자이너, 개발자, 마케터 등 역할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개인의 역할이 확장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리더 역시 단순히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 AI 활용 방식을 직접 실험하고 조직에 확산시키는 역할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AI 도입 과정에서 나타나는 ‘J-커브’ 현상을 언급했다. 강 교수는 “AI를 도입하면 기존 업무 방식이 흔들리면서 단기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지만, 일정 시점을 지나면 급격한 성과 향상이 나타난다”며 “리더는 이 과도기를 이해하고 조직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AI 신뢰부터 경쟁력까지…현장에서 드러난 화두
이날 행사에서는 청중과의 질의응답 세션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특히 AI 도입이 확산되는 가운데 스타트업 경쟁력, 조직 운영 방식, 교육 시스템 변화 등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어졌다.
인상적인 질문 중 하나는 ‘AI를 얼마나 신뢰해야 하는가’라는 부분이었다. 이에 대해 암 진단 솔루션 기업 프리베노틱스의 장수연 대표는 의료 AI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그는 “현재 AI는 완전한 정답을 제공하는 존재라기보다,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도구에 가깝다”며 “의료 분야에서는 장기간의 임상 검증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고 있으며, 그 과정 자체가 AI 활용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비게이션처럼 완벽하지 않더라도 사용자가 한계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수준의 신뢰가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표현했다.
강효석 교수 역시 AI 신뢰 문제를 ‘환경 변화’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그는 “AI는 우리가 사용하는 순간에도 계속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고정된 기준으로 신뢰도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중요한 것은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검증하고 재정의하는 태도”라고 밝혔다. 특히 “AI가 제시하는 결과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오히려 인간의 판단 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며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살라나브 교수는 신뢰 문제를 리더십 차원에서 해석했다. 그는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최종적인 판단과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며 “AI는 답을 제시할 수 있지만, 어떤 답을 선택해 행동으로 옮길지는 리더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어 “AI 시대에는 ‘정답을 찾는 능력’보다 ‘어떤 질문을 던지고 무엇을 믿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고 언근했다.
스타트업 경쟁력과 관련한 질문도 이어졌다. 강 교수는 “AI 모델이 점점 유사한 결과를 내놓는 상황에서 기술만으로 차별화하기는 어려워지고 있다”며 “결국 경쟁력은 문제 정의, 실행력, 조직 역량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살라나브 교수는 “AI로 제품 개발 장벽이 낮아진 만큼, 이제는 경쟁을 피하고 독자적인 시장을 만드는 전략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수연 대표는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현실적인 시각을 제시했다. 그는 “AI 덕분에 창업은 쉬워졌지만, 실제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며 “좋은 기술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제 사용 환경에서 검증된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장 대표는 “AI는 이제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된 만큼, 결국 중요한 것은 올바른 답을 얻으려 하기보다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 그리고 자기만의 관점을 갖는 것”이라고 밝혔다.
AI 시대 조직 운영과 관련해서는 별도의 AI 조직을 두고 실험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강 교수는 “기존 조직은 과거 성공 방식에 익숙해 변화에 저항할 수 있기 때문에, 별도의 실험 조직을 운영하는 전략은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성과 격차가 발생할 경우 조직 내 갈등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계 관계자가 참여한 만큼 대학과 교육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됐다. 강 교수는 “현재 대학 교육은 학문별 분과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지만, AI 시대에는 이러한 구분이 점점 의미를 잃고 있다”며 “공학, 경영, 사회과학을 아우르는 융합형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AI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리더십 문제이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살라나브 교수는 “전통적인 학위 과정은 변화 속도가 느리지만, 기업 대상 교육은 빠르게 실험하고 적용할 수 있다”며 “앞으로는 현업 중심의 실험형 교육과 학습 방식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jihyun.lee@foundryco.com
Read More from This Article: “정답 제시 대신 질문하고 판단하라”…AI 시대 필요한 리더의 조건을 묻다
Source: New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