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P가 AI 중심 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하기 위해 올해 들어 두 번째 경영진 조직 개편에 나섰다.
첫 번째 개편은 지난 3월 이뤄졌다. SAP는 고객 성공(Customer Success) 조직과 고객 서비스 및 딜리버리(Customer Services and Delivery) 조직을 통합해 ‘고객 가치 그룹(Customer Value Group)’을 신설했다.
이를 통해 영업, 구축, 서비스, 기술지원 등 고객 관련 기능을 고객 서비스 및 딜리버리 담당 이사회 멤버였던 토마스 자우어에시히(Thomas Saueressig)에게 일원화했다. 현재 자우어에시히는 최고고객책임자(CCO)를 맡고 있다.얼마 지나지 않아 SAP는 제품 및 엔지니어링을 총괄하는 이사회 멤버 무함마드 알람(Muhammad Alam)이 2027년 3월 계약 만료 후 연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알람의 후임을 즉시 선임하지 않기로 한 SAP는 그의 업무를 다른 경영진에게 분산하기로 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산업 AI 부문을 제외한 알람의 모든 조직은 크리스티안 클라인(Christian Klein) CEO가 직접 총괄하며, 산업 AI 조직은 세바스티안 슈타인호이저(Sebastian Steinhäuser) 최고운영책임자(COO)가 맡는다.또 SAP는 새로운 제품 총괄 임원을 선임하기 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외부 인재를 물색할 계획이다. 다만 해당 직책의 역할과 조직 체계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알람은 제품 전략과 개발을 비롯해 SAP의 글로벌 제품·엔지니어링 조직과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 전반을 총괄해왔다.
AI 전환 가속화
이번 조직 개편은 SAP의 AI 전환을 앞당기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SAP는 설명했다.
SAP 대변인은 CIO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SAP는 AI 기반 자율기업(Autonomous Enterprise)으로의 전환을 가속하기 위해 조직을 재편하고 있다”라며 “새로운 조직 구조는 AI, 데이터, 핵심 애플리케이션을 더욱 긴밀하게 연결해 SAP의 프로세스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통합 엔드투엔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개편은 심도 있는 프로세스 전문성,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유연한 플랫폼을 결합해 대규모 환경에서도 차별화되고 신뢰할 수 있는 비즈니스 AI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한다”라며 “이를 통해 차세대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SAP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몇 달 사이 두 차례 경영진 개편이 이뤄진 점을 우려할 수도 있지만, 무어 인사이트 앤드 스트래티지(Moor Insights & Strategy)의 부사장 겸 수석 애널리스트 제이슨 앤더슨(Jason Andersen)은 고객의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변화라고 평가했다.
앤더슨은 “AI는 기술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완화할 잠재력이 있지만 기업 문화와 산업별 요구사항, 규제 환경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많다”라며 “고객의 시스템 전환을 지원하는 업무가 새로운 혁신과 성장 기회 창출에 필요한 역량을 분산시킬 수도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올봄 토마스 자우어에시히의 역할이 확대된 것은 기존 고객 기반을 현대화해야 하는 과제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라며 “이번에 크리스티안 클라인 CEO가 제품 조직을 직접 맡게 된 것은 SAP를 ‘SaaS 우선(SaaS-first)’ 기업에서 ‘AI 우선(AI-first)’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또 하나의 대규모 과제를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AI만으로는 가치 창출 어렵다
인포테크 리서치 그룹(Info-Tech Research Group)의 수석 리서치 디렉터 테라 히긴슨(Terra Higginson)은 “기업들이 AI 투자 대비 성과 격차(value gap)를 본격적으로 문제 삼기 시작했다”라며 “이번 리더십 개편은 SAP가 AI만으로는 충분한 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SAP는 전략이 실행 과정에서 어디에서 힘을 잃고 있는지 파악하려 하고 있지만, 이는 SAP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같은 문제가 소프트웨어 업계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레이하운드 리서치(Greyhound Research)의 수석 애널리스트 산치트 비르 고기아(Sanchit Vir Gogia)는 “이번 조직 개편은 AI 실행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의미가 아니라, AI 전략과 실행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신호로 보는 것이 맞다”라며 “분명한 것은 SAP가 AI와 고객 도입, 클라우드 중심 실행을 축으로 운영 모델을 다시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고기아는 이번 개편 시점을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제성에 가해지는 현실적인 압박”에 대응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는 “경영진의 강한 의지만으로 AI 에이전트가 재무나 급여 업무를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지금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기대도 과도한 불안도 아닌, 신중하고 냉정한 접근”이라고 말했다.
또 CIO가 SAP에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이번 조직 개편으로 우리 IT 환경에서 실제 무엇이 달라지는가”라고 조언했다.
그는 “제품 로드맵의 책임자가 바뀌는지, 출시 일정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계약상 책임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라며 “계약을 갱신하거나 프로젝트를 이사회에 설명할 때 실제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제품보다 계약서를 살펴야
고기아는 SAP가 제품에 AI 기능을 확대하는 만큼 CIO들도 제품 홍보보다 계약 내용을 더욱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AI 모델 제공업체와의 책임 범위, 고객 데이터 활용 방식, 데이터 활용 거부(옵트아웃) 권리 등이 계약서에 명확하게 규정돼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기아는 “SAP가 고객 데이터를 제3자 AI 모델 학습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 약속은 홈페이지가 아니라 계약서에 명시돼 있어야 한다”라며 “AI 기능이 기본 제공에서 사용량 기반 과금으로 전환될 경우 과금 방식도 계약서에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워크플로우가 SAP와 타사 시스템을 오갈 경우 최종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할 수 없는 제품 약속은 약속이 아니라 구호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엔터프라이즈 고객은 조직 개편 자체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SAP의 운영 모델을 면밀히 검증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dl-ciokorea@foundry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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