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P는 ‘사파이어 2026’에서 AI 에이전트가 스스로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수행하는 ‘자율형 기업(Autonomous Enterprise)’ 비전을 강조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지난 13일 고객 기조연설에서는 보다 복합적인 현실이 드러났다. 록히드마틴, 엑슨모빌, 아에로푸에르토스 아르헨티나, 리바이스는 각 산업 특성과 리스크 수용도, 전략적 우선순위에 따라 서로 다른 AI 전략을 제시했다.
SAP 최고 AI 책임자(CAIO) 조너선 폰 뤼덴은 이번 주 초 CIO.com과의 인터뷰에서 “고객마다 성숙도와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며 “일부는 에이전트가 우리가 지시한 것만 수행하길 원하지만, 리테일 업계는 보다 선제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무대에 오른 4개 기업은 이러한 차이를 분명히 보여줬다. 115년 역사의 에너지 기업이 의도적으로 ‘AI 열풍을 지켜보는’ 전략을 취하는 반면, 1000개 이상의 에이전트를 이미 도입한 170년 전통 패션 기업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형성했다.
엑슨모빌 “AI 열풍, 지금은 지켜볼 때”
엑슨모빌은 현재 수십 년간 축적된 SAP 커스터마이징을 제거하고 ‘클린 코어’로 전환하는 대규모 혁신을 추진 중이다.
다만 115년 역사의 이 석유·가스 기업은 AI 도입에 속도를 내기보다는 신중한 접근을 택하고 있다. 엑슨모빌 비즈니스 트랜스포메이션 담당 부사장 빌 케일러는 “AI 열풍은 그대로 두고 지켜보는 것이 낫다”며 “기초를 완벽하게 다지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그가 강조한 ‘기초’는 데이터다. 케일러는 데이터를 그동안 ‘갇혀 있던 전략 자산’으로 규정하며 “이를 해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반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면 그 대가를 계속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대규모 전환을 추진하는 CIO들에게 명확한 전략적 의도 설정, 강력한 거버넌스 구축, 그리고 “단순한 업무가 아니라 상호 윈윈으로 접근하는” 파트너 선정이 핵심이라고 조언했다.
록히드마틴 “목표는 전환이 아닌 준비 상태”
록히드마틴의 CIO 마리아 데마리는 AI와 전환에 대한 논의를 ‘준비 상태(Readiness)’ 중심으로 재정의했다. 그는 “전환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라며 “진짜 목표는 준비 상태”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표현은 의도적인 선택이다. 방위·항공우주 기업인 록히드마틴에게 준비 상태란 생명이 달린 상황에서도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데마리는 “그 중요성은 매우 크고, 결국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다”고 말했다.
현재 록히드마틴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현대화 투자를 진행 중이다. 수십 년간 누적된 시스템 단절과 프로세스 분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작업이다. 그는 “문제는 노력의 크기가 아니라 복잡성에 있다”며 “서로 연결되지 않은 시스템과 분절된 프로세스가 핵심 과제”라고 설명했다.
또한 데마리는 AI가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기존 운영에 ‘덧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조직 전반에 내재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환은 기술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프로세스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공항공사, 12주 만에 AI 실운영 구현
스펙트럼의 반대편에서는 아에로푸에르토스 아르헨티나가 이미 기반을 갖춘 조직이 얼마나 빠르게 AI를 구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이 회사는 35개 공항을 운영하며 아르헨티나 상업 항공 교통의 90%를 처리한다. 특히 파타고니아 지역의 8개 공항은 겨울철 기상이 주요 운영 리스크로 작용한다. 기상 예측과 결빙·제설 관리는 기상, 운영, 유지보수, 공급망 팀 간 정밀한 협업이 필수적이지만, 과거에는 이러한 과정이 수작업 중심으로 분절돼 비효율적이었다.
ECC에서 S/4HANA로 전환한 이후, 아르헨티나 공항공사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이곳의 CIO 구스타보 사바토는 단 12주 만에 ‘S.N.O.W.(Smart Network for Operative Winter)’라는 AI 에이전트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이 에이전트는 기상 데이터, 활주로 센서, 유지보수 프로세스를 통합해 의사결정을 자동화하고 작업을 실시간으로 조율한다.
그 결과 직접 비용 16% 절감, 행정 업무 시간 90% 감소, 이산화탄소 45톤 감축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해당 솔루션은 SAP 2025 LATAM 고객 혁신 콘테스트에서 수상했으며, 현재 연중 운영 중이다. 또한 향후 몇 주 내 2개 공항에 추가 적용되며, 다음 겨울에는 6개 공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리바이스, AI 에이전트 1000개 시대
가장 공격적인 에이전트 기반 AI 도입 사례는 리바이스에서 나왔다. 이 회사는 대부분의 기업용 벤더가 관련 도구를 제공하기 전인 2년 반 전부터 생성형 AI 도입에 선제적으로 나서며 경쟁사 대비 우위를 확보했다.
현재 170년 역사의 이 의류 기업은 1000개 이상의 AI 에이전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4000명 이상의 직원에게 AI 교육을 실시했다. 또한 S/4HANA 패션과 마이크로소프트 애저를 기반으로 SAP와 공동 혁신을 추진하면서, 10여 개에 달하는 레거시 ERP를 단일 글로벌 플랫폼으로 통합하고 있다.
이 같은 통합 과정에서는 기존 업무 방식을 바꾸기 위한 어려운 논의가 필요했다고 리바이스의 최고 디지털·기술 책임자 제이슨 고완스는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AI 활용을 가능하게 만든 핵심 요인이었다. 그는 “표준화와 민첩성은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다”라며 “표준화가 오히려 민첩한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과거 소규모 리테일러로부터 PDF, 이메일, 스프레드시트 형태로 접수되던 도매 주문은 처리에 2~5일이 소요됐지만, 현재는 마이크로소프트 애저와 SAP 기반 AI 에이전트를 통해 20~30분으로 단축됐다.
고완스는 이러한 성과 뒤에 숨은 노력도 인정했다. 그는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라며 “170년 역사를 가진 기업이 제자리에 머물러서는 생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편집자 주 : 이 기사는 SAP의 지원을 받아 사파이어 행사 현장에서 취재되었습니다.
dl-ciokorea@foundry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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