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조사업체와 업계 분석가들은 AI 구축 확대와 전반적인 데이터 증가로 인한 전례 없는 수요 때문에 지난해 시작된 스토리지 가격 상승이 2026년 내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 결과 일부 기업은 공급 여건이 개선되고 가격이 안정될 때까지 수개월간 온프레미스 AI 프로젝트를 연기할 가능성이 있다.
UC 샌디에이고 공학 교수이자 비영리 프로젝트 오픈 헤리티지 3D(Open Heritage 3D)의 책임자인 팔코 퀴스터는 “스토리지 수요는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픈 헤리티지 3D는 역사적 유적지의 이미지, 영상, 라이다(LiDAR), 포인트 클라우드 등 다양한 스캔 데이터를 수집해 대중과 연구 커뮤니티에 공유하는 프로젝트다.
오픈 헤리티지 3D는 ‘기준 데이터’를 구축 및 공유하기 위해 모든 원본 데이터와 스캔 결과를 접근하기 쉬운 온라인 형식으로 공개하고 있다. 이로 인해 데이터 규모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퀴스터에 따르면 스캔 데이터에 다양한 방식으로 처리·분석·주석이 추가되면서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이미지와 스캐닝 기술의 해상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데이터 규모는 이미 수백 테라바이트에 달하며, 향후 18개월 안에 페타바이트 단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퀴스터는 “이것이 데이터의 본질”이라며 “확보한 스토리지가 늘어날수록 그만큼 더 많은 데이터를 쌓게 된다. 데이터 과학에서는 이런 흐름이 반복되는 특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오픈 헤리티지 3D만의 사례가 아니다.
데이터 관리 기업 컴프라이즈(Komprise)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직원 수 1,000명 이상 기업 가운데 약 40%는 현재 10페타바이트 이상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다. 또한 응답 기업의 85%는 향후 1년 동안 스토리지 지출을 늘릴 계획이라고 답했는데, 이는 2024년 조사 당시 59%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다. 최우선 과제로는 비용 최적화가 64%로 가장 많이 꼽혔고, AI를 위한 데이터 준비가 61%, 클라우드 이전이 54%로 뒤를 이었다.
가격 인상 본격화
여러 지표가 2026년에 메모리와 스토리지 가격의 급상승을 예고하고 있다.
공급망 컨설팅 기업 서큘러 테크놀로지(Circular Technology)의 글로벌 리서치·시장 인텔리전스 총괄인 브래드 개스트워스는 최근 CES 행사에서 주요 시장 참여자들과 만난 뒤, 디램(DRAM)과 낸드(NAND) 가격이 50% 이상 상승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개스트워스는 “메모리와 스토리지는 더 이상 부차적인 부품이 아니라 시스템 전반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제약 요소”라며 “주요 클라우드 업체와 엔터프라이즈 전반에서 AI 인프라 수요가 여러 분기에 걸쳐 증가하고 있지만 공급은 제한된다. 수요와 공급 구조가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는 일시적인 가격 급등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레노버 인프라스트럭처 솔루션 그룹의 AI·고성능컴퓨팅 부문 부사장 겸 총괄 책임자인 스콧 티즈는 메모리 가격 상승이 이미 예견된 흐름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여름부터 메모리 가격이 오르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하고 대비해 왔다. 2025년 초와 비교하면 가격이 최대 4배까지 상승할 전망이다. 이는 매우 큰 변화”라고 설명했다.
티즈는 “주력 제품이자 가격 대비 성능이 가장 적절한 64기가바이트 DIMM(Dual In-line Memory Module)의 경우, 현재는 개당 200달러 초반에 조달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몇 달 안에 가격이 800달러에 다다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스마트폰과 노트북, 서버 등 레노버가 만드는 모든 장비에는 이와 동일한 메모리 구성 요소가 들어간다. 공급 부족은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라고 진단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TrendForce)는 1월 보고서를 통해 올해 1분기 디램 가격이 전년 동기 대비 55~60% 상승하고, 낸드 플래시 가격도 33~38%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공급 부족 확산
트렌드포스는 디램 제조업체가 생산 역량을 AI 수요에 집중하면서 다른 시장에 대한 공급이 더욱 제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요 클라우드 업체나 OEM 같은 대기업은 이미 물량을 확보한 상태지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은 공급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트렌드포스는 현재 디램 재고가 고갈 단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유형의 메모리 역시 각기 다른 이유로 공급이 제약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MLC 낸드 플래시다. MLC 낸드 플래시는 산업 제어, 의료기기, 네트워크 장비 등 엔터프라이즈 시장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수요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트렌드포스와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6년 6월 MLC 낸드 생산을 종료할 예정이다. 다른 업체들이 이를 대체하기 위해 나서고 있지만, 트렌드포스는 올해 전체 MLC 낸드 플래시 생산 역량이 42%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디램과 낸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IEEE 펠로우이자 커글린 어소시에이츠(Coughlin Associates) 대표인 톰 커글린은 “현재 모든 메모리와 스토리지에서 수요를 충족할 만큼의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제조업체가 공급 확대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고 언급했다. 업체가 생산 역량을 늘리는 데 투자하다 시장 수요가 이미 다른 방향으로 이동해 손실을 본 사례가 과거에 반복됐다는 것이다. 커글린은 “반도체 공장을 하나 짓는 데만 약 15개월이 걸리고 비용은 500억 달러에 이른다. 일부 기업은 이렇게 생산 역량을 늘렸다가 원가 이하로 제품을 판매해야 했고, 반도체 공장 운영에서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하드디스크와 SSD 제조업체가 시장 수요 변동에 대비하기 위해 데이터센터와 같은 대규모 고객과 장기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고도 언급하면서, “일부 계약은 2027년까지 이어진다”라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상당량의 공급 물량이 장기 계약에 묶여 기업이 스토리지를 확보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하드디스크와 SSD 제조업체인 웨스턴디지털(WD)도 이 같은 상황을 확인했다. 웨스턴디지털 최고제품책임자 아흐메드 시하브는 “전반적으로 공급이 빠듯한 상태가 이어질 것이며, 이는 특정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최근 몇 주간 진행된 실적 발표에서 모두 같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구조적으로 이전과는 다른 국면에 들어섰다”라고 전했다.
시하브는 신규 수요의 상당 부분이 AI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는 “AI 학습이든 추론이든 변화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웨스턴디지털은 2026년 이후의 계약을 체결하고 있으며, 출하하는 스토리지의 평균 용량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일부 SSD 모델은 현재 납기일이 1년 이상 지연되는 상황에 놓여있다.
QLC 수요 확대
하드디스크 공급 부족이 이어지면서 QLC(quad-level cell) SSD가 점점 더 채택되는 추세다. 트렌드포스는 엔터프라이즈 SSD 시장에서 QLC의 점유율이 30%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커글린 역시 “QLC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더 작은 공간에서 더 큰 용량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 납기 지연이라는 압박 속에서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커글린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스토리지를 최대한 오래 활용하는 전략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커글린은 “일부 제품은 과거보다 신뢰성이 크게 개선됐고, 이를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QLC 낸드 플래시에 대한 쓰기 횟수를 최소화하면 해당 부품의 수명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 그는 “데이터를 통합해 꼭 필요한 부분만 기록하도록 하는 등 보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쓰기를 수행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포레스터 리서치(Forrester Research)의 애널리스트 브렌트 엘리스는 “지금은 대규모로 추가 스토리지를 구매할 시점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규모 AI 클러스터 도입을 검토하는 중견 기업이 스토리지 구매를 고려 중이라면, 몇 달 정도 미루는 선택지도 있다”라고 분석했다.
dl-ciokorea@foundry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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