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동안 기술 수출 통제는 소스코드를 다른 국가로 이전하는 행위를 의미했다. 그러나 최근 앤트로픽과 미국 상무부 간 갈등은 이러한 개념이 더 이상 현실에 부합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앤트로픽은 6월 12일 미국 상무부로부터 “미국 내외를 불문하고 모든 외국 국적자에 대한 페이블 5와 미토스 5 접근을 중단하라”는 지침을 받았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외국 국적의 앤트로픽 직원도 포함된다.
앤트로픽은 “이번 지침의 결과로 규정 준수를 위해 모든 고객에 대한 페이블 5와 미토스 5 서비스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며 “다른 앤트로픽 모델에 대한 접근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엄밀히 말하면 미 상무부의 입장문에는 이러한 내용이 명시적으로 적혀 있지는 않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와 컨설턴트들은 이전에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 요소로 지정한 행정명령과 함께 해석할 경우 사실상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상무부 입장문의 핵심은 앤트로픽이 페이블 5와 미토스 5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이른바 ‘수출로 간주되는(deemed export)’영역에 해당한다. 입장문은 허가가 필요한 경우를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규정했다.
- 어떤 방식으로든 모델을 미국 밖으로 이전하거나 반출하는 경우
- 어떤 방식으로든 한 외국 국가에서 다른 외국 국가로 모델을 이전하는 경우
- 동일한 외국 국가 내에서 모델을 재이전하는 경우
- 미국 또는 해외에 있는 ‘외국인(foreign person)’에게 모델을 공개하거나 제공하는 경우
이는 기존의 소스코드 이전 개념을 넘어 AI 모델에 대한 접근 자체를 수출 행위로 간주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소스코드 아닌 ‘AI 역량’ 통제
과거에는 AI 모델을 이전한다는 것이 곧 소스코드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SaaS 형태로 제공되는 AI 서비스가 일반화된 현재에는 그 정의가 달라졌으며, 이제는 모델 자체가 아니라 모델에 대한 접근 권한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인포테크 리서치 그룹(Info-Tech Research Group)의 자문 연구원 발렌스 하우든은 “이제 이 문제는 단순한 데이터 주권의 영역이 아니다”라며 “정부들은 누가 첨단 AI 역량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통제하려 하고 있다. 누가 개발했는지, 어디에 호스팅돼 있는지, 누가 개발에 참여했는지는 더 이상 핵심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우든은 “수출로 간주되는(deemed export)이라는 표현이 중요한 이유는 원래 소스코드나 기술, 기술 지식이 이전될 때 적용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이번 사례에서 국경을 넘는 것은 반드시 모델 자체가 아니다. 실제로는 AI 역량에 대한 접근 권한이 이동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는 매우 큰 변화이며 AI 패권 경쟁의 진정한 의도를 보여준다”라며 “규제의 초점이 기술 자체를 통제하는 것에서 기술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물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술 법률 전문가이자 전직 연방 검사인 마크 라시도 같은 견해를 나타냈다.
라시는 “이제는 소스코드가 물리적으로 내 시스템에 존재하지 않아도 그 코드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라며 “오늘날에는 소스코드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과제
이번 사안에는 두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앤트로픽 직원 상당수가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며, 이들 중 일부는 해당 모델의 소스코드에 직접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AI 서비스 사용자의 국적을 확인하는 일이 현재로서는 매우 어렵거나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모든 사용자가 잠재적으로 미인가 사용자일 수 있다고 가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컨설팅 기업 액셀리전스(Acceligence)의 CIO 유리 고류노프는 “API 호출만으로 사용자의 국적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라며 “게다가 미국인의 약 75%는 여권조차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포머가브(FormerGov)의 전무이사 브라이언 레빈은 상무부의 법적 논리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CIO들에게는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레빈은 “상무부의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와 관계없이 일단 ‘Is Informed’ 서한이 발급되면 외국인과 이뤄지는 모든 무허가 상호작용이 잠재적 규정 위반으로 간주될 수 있다”라며 “허가 절차가 마련되기 전까지 접근을 중단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대응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는 기업 CIO들이 앞으로 AI 계약을 체결할 때 어느 정부든 예고 없이 특정 제품의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함을 의미한다.
주권 논쟁의 중심, 데이터에서 AI로 이동
하우든은 이러한 변화가 기업 CIO들로 하여금 프랑스의 미스트랄(Mistral)이나 중국의 딥시크(DeepSeek)와 같은 미국 외 AI 모델을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하게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특정 공급자에 대한 집중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라며 “시중에는 매우 뛰어난 모델이 수백 개나 존재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4~5개 모델만 바라보는 것은 일종의 정보 편향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 CIO들은 실제보다 시장이 훨씬 제한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컨설팅 기업 그레이하운드 리서치(Greyhound Research)의 수석 애널리스트 산칫 비르 고기아는 기업 경영진이 AI 모델을 선택할 때 최근의 수출 규제 변화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기아는 “더 불편한 진실은 주권 개념이 기술 스택 상위 계층으로 올라왔다는 점”이라며 “장벽은 더 이상 데이터베이스를 둘러싸고 있지 않다. 이제는 지능 계층 자체를 둘러싸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출 통제 체계에서는 미국 내에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외국인에게 통제 대상 기술이나 소스코드를 제공하는 행위를 규제 대상으로 본다”라며 “국경은 이제 물건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따라간다. 소스코드는 이러한 원칙의 일부일 뿐 전부는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또 “문제는 관련 규정이 기술과 소스코드를 대상으로 작성된 반면 이번 서한은 모델 자체를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라며 “호스팅 방식의 AI 모델은 사용자에게 가중치(weights)나 소스코드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추론(inference)을 제공한다. 그리고 추론은 파일이 아니라 역량”이라고 설명했다.
고기아는 결국 앤트로픽이 모든 사용자에 대한 모델 접근을 즉시 차단한 결정이 “실행 불가능한 지침에 대한 합리적 대응”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제 최첨단 AI 모델은 가동 시간, 가격, 성능과 무관한 이유로도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라며 “보안 강화에 활용되던 동일한 모델이 정작 방어자가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철수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dl-ciokorea@foundry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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