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역량이 부족한 CIO는 조직에 부담이 되는 존재다. 디지털 전환 이정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클라우드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사이버 리스크는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고, 현업 이해관계자의 불만은 커진다. 기술이 거의 모든 수익원과 운영 모델을 떠받치는 시대에 CIO의 성과 부진은 쉽게 용납되기 어렵다.
그러나 장기적인 전략 관점에서 보면, 성과가 좋지 않은 CIO는 오히려 예상 밖의 가치를 남기기도 한다. 바로 조직의 ‘명확성’이다. 이는 무능을 옹호하거나 평범함을 용인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다만 특히 기술 영역에서의 리더십 실패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취약점을 드러내고, 미뤄왔던 결정을 강제하며, 기업의 성숙도를 앞당기는 독특한 계기가 된다는 점을 짚는 것이다. 많은 조직에서 역량이 부족한 CIO는 무난한 수준의 CIO라면 결코 촉발하지 못했을 변화를 이끌어내는 촉매제가 된다.
이 같은 논의의 배경도 가볍지 않다. 88개국 3,100명 이상의 CIO를 대상으로 한 가트너의 ‘2025 CIO 및 기술 경영진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사 디지털 이니셔티브 가운데 사업 성과 목표를 달성하거나 초과 달성한 비율은 48%에 그쳤다. 동시에 보스턴컨설팅그룹과 맥킨지의 연구는 디지털 전환 프로그램의 약 70%가 목표 달성에 실패한다고 분석했다.
기술 주도 변화의 기본 실패 확률이 이처럼 높은 상황에서 핵심 질문은 CIO가 실패하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실패하느냐, 그리고 그 실패에 조직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본질이다.
실패는 기술을 드러낸다. 그것이 핵심이다.
기술 리더십이 ‘그럭저럭’ 작동할 때 기술은 배경으로 물러난다.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프로젝트는 점진적으로 진행되며, 경영진의 대화는 성장과 시장, 경쟁으로 옮겨간다. 기술은 점검의 대상이 아니라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CIO가 실패하면 이런 안락함은 깨진다. 비용 초과, 일정 지연, 보안 사고는 기술을 다시 조명 아래로 끌어낸다. 어쩌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오는 셈이다. 이사회는 그동안 상시적으로 점검했어야 할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실제로 기술에 얼마를 지출하고 있는가, 어떤 이니셔티브가 측정 가능한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하는가, 어디에 숨은 리스크를 안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가시성은 불편하지만 교정 효과를 낳는다. 이러한 질문에 직면한 조직은 문제의 범위가 CIO 개인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모호한 권한 위임, 취약한 거버넌스, 성과 책임의 불명확성 등이 함께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역량이 부족한 CIO는 이러한 구조적 결함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
영웅형 CIO의 신화
엔터프라이즈 IT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면서도 해로운 서사 중 하나는 ‘영웅형 CIO’다. 개인의 전문성과 영향력으로 아키텍처, 벤더 관리, 전략, 실행을 모두 묶어내는 단일 리더 모델을 의미한다.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구조적으로는 취약성을 키운다.
허드헌팅 기업 러셀레이놀즈어소시에이츠(Russell Reynolds Associates)의 2024년 포춘 500대 기업 기술 임원 분석에 따르면, 현재 최고 기술 책임자의 53%는 외부 영입 인사다. 또한 전통적인 CIO 직함이 차지하는 비중은 5년 전 68%에서 49%로 줄었다. 대신 디지털, 데이터, 전환을 통합한 하이브리드 직함이 이를 대체하고 있다. 이는 조직이 개인 중심 리더십에서 벗어나 역할 기반의 제도화된 기술 거버넌스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역량이 부족한 CIO가 실패하면 영웅 신화는 무너진다. 의사결정은 멈추고, 지식 공백이 드러나며, 그동안 보이지 않던 의존 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혼란스러운 순간이지만 중요한 진실이 확인된다. 특정 개인이 없으면 조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리더의 자질이 아니라 제도 설계에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은 운영을 공식화할 수밖에 없다. 아키텍처를 문서화하고, 의사결정 권한을 명확히 하며, 차세대 리더를 육성한다. 기술은 더 이상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체계가 아니라 역할과 프로세스 중심의 시스템으로 전환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구조적 회복탄력성은 탁월함이 아니라 실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CFO와 CIO의 긴장 속 정렬
경영진 내에서 CIO와 CFO의 관계만큼 중요하면서도 긴장감이 높은 관계는 드물다. 기술 투자가 명확한 가치를 창출할 때는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러나 기대에 못 미칠 경우 긴장은 빠르게 고조된다.
역량이 부족한 CIO는 이러한 재점검의 시점을 앞당긴다. 급증하는 클라우드 비용, 타당성이 부족한 전환 프로그램, 모호한 투자 대비 수익 설명은 재무 부문의 면밀한 검증을 불러온다. 재무 책임자는 단위 경제성, 비용 배분 구조, 측정 가능한 성과를 요구한다.
이 과정은 불편하지만 더 건강한 운영 모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기술 이니셔티브는 다른 투자안과 동일하게 자본을 두고 경쟁하게 된다. 가정은 도전받고, 재무적 규율은 실패 이후에 뒤늦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초기 단계부터 내재화된다.
조직의 질문도 달라진다. “이것을 할 수 있는가”에서 “이것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를 선택한다면 무엇을 중단할 것인가”로 전환된다. 실패가 촉발한 이러한 변화는 오랜 기간 검증받지 않은 낙관론이 지속됐을 때보다 더 나은 자본 배분으로 이어지곤 한다.
고통에서 태어나는 거버넌스
빠르게 움직이는 조직에서는 거버넌스가 혁신의 발목을 잡는 장치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정책은 뒤로 미뤄지고, 통제는 느슨해지며, 리스크는 명시적으로 관리되기보다 암묵적으로 수용된다. 유능한 CIO는 이러한 구조를 일정 기간 유지할 수 있지만, 그 사이 취약성은 누적된다.
성과가 부진한 CIO는 거버넌스를 전면에 끌어올린다. 보안 취약점은 이사회의 관심을 불러오고, 감사 결과는 시정 조치를 요구하며, 규제기관과 고객, 보험사는 보증을 요구한다. 그 순간 거버넌스는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 결과 조직은 보다 성숙한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갖추게 된다. 명확한 리스크 수용 범위를 설정하고, 보고 및 대응 경로를 구체화하며, 기술·법무·전사 리스크 조직 간 정렬을 강화한다. 거버넌스는 IT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의 문제로 자리 잡는다. 많은 조직이 거버넌스 부재의 대가를 치른 뒤에야 이를 본격적으로 강화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역량이 부족한 CIO는 그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곤 한다.
보여주기식 전환과 실질적 변화
디지털 전환은 이제 기업 전략 발표 자료에서 빠지지 않는 상수가 됐다. 그러나 실행의 완성도는 크게 엇갈린다. 2021년 자료이긴 하지만 BCG가 850개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 가운데 목표를 달성한 비율은 35%에 그쳤다.
리더십이 약한 CIO 아래에서는 이른바 ‘전환 쇼’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확장성을 고려하지 않은 파일럿, 책임 구조가 불분명한 로드맵, 실제 운영 현실과 동떨어진 이니셔티브가 반복된다.
이러한 시도가 실패하면 환상은 걷힌다. 경영진은 활동과 성과를 구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질문도 달라진다. “우리는 몇 개의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있는가”에서 “그 가운데 실제로 우리의 운영 방식이나 경쟁 방식을 바꾸는 것은 무엇인가”로 이동한다.
이 같은 각성의 순간은 건설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은 보여주기식 지표를 버리고, 더 적은 수의 고임팩트 과제에 집중한다. 현업 리더는 전환의 성과 책임을 IT에 전적으로 넘기지 않고 직접 가져오기 시작한다. 기술은 전략을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라 전략을 구현하는 도구로 재정의된다.
전략 재정비의 순간
성과가 부진한 CIO의 퇴장은 단순한 인사 교체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기술 리더십에 대한 근본적 가정을 재검토하는 일종의 멈춤 버튼이 된다. 때로는 조직이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유일한 재정비의 시간이다.
CIO는 운영 책임자에 가까워야 하는가, 아니면 전환 리더여야 하는가. IT는 어느 정도 중앙집중화돼야 하는가. 어떤 의사결정은 현업에 맡겨야 하고, 어떤 사안은 전사 차원의 통제가 필요한가. 사이버 보안, 데이터, 디지털 제품의 소유권은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이 제기된다.
CIO.com의 운영사 파운드리의 ‘2025 CIO 현황’ 보고서에선 이러한 변화의 폭을 확인할 수 있다. CIO의 81%는 자신의 역할이 변화 촉진자로 진화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또한 65%는 조직의 IT 예산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며, AI에 대한 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점진적 조정이 아니라 CIO 역할 자체에 대한 근본적 재정의를 의미한다. 다만 이러한 재정의는 가시적인 실패 이후에야 경영진의 주목을 받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 안정돼 보이는 시기에는 이러한 질문을 꺼내기 어렵다. 실패는 이를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역량이 부족한 CIO는 조직이 회피해왔던 전략적 리셋의 창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진짜 위험은 안락함이다
가장 위험한 CIO는 눈에 띄게 실패하는 인물이 아니다. 비즈니스 환경이 기술 아젠다보다 더 빠르게 변하고 있음에도 점진적 성과에 안주하는 CIO다. 이들은 좀처럼 검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예산은 승인되고, 프로그램은 지속되며, 리스크는 조용히 축적된다.
2025년에 공개된 내시 스퀘어드 디지털 리더십 보고서에 따르면, CIO의 70% 이상이 현 조직에서 근무한 지 5년이 채 되지 않았다. 또한 컨설팅 기업 콘페리0(Korn Ferry)의 2020년 미국 상위 1,000개 기업 C레벨 임원 재임 기간 분석 결과, CIO의 평균 재임 기간은 4.6년으로, CEO(6.9년)와 CFO(5.0년)보다 짧았다. 이는 기술 변화의 속도를 반영하는 동시에, 많은 CIO가 특정 전환 단계를 이끌기 위해 임명된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안주하는 CIO의 전략적 공백이 명확해질 때쯤이면, 점진적 수정으로는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역량이 부족한 CIO는 조기 경고 신호를 만들어낸다. 안일함 대신 직면을 요구한다. 이사회와 CEO가 배워야 할 교훈은 실패를 용인하라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하나의 정보로 인식하라는 데 있다. 기술 리더십의 실패는 대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전반의 선택을 반영한다.
실패보다 빠른 학습
이 같은 논의가 조직이 CIO의 부진한 성과를 불가피한 비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재무적 손실은 물론 평판과 운영 측면에서의 타격도 결코 가볍지 않다. 실패의 대가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실패가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질문은 “누가 책임인가”가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외면해왔던 무엇이 드러났는가”다. CIO의 실패를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조직은 중요한 기회를 놓친다. 반대로 이를 시스템적 신호로 받아들이는 조직은 더 강한 모습으로 재정비한다. 전략은 명확해지고, 거버넌스는 촘촘해지며, 재무적 규율은 강화되고, 기술 리더십 모델은 한층 탄탄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역량이 부족한 CIO가 ‘좋다’고 평가되는 이유는 실패 자체에 있지 않다. 실패를 가시화한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가시성은 의미 있는 변화를 향한 첫걸음이다.
dl-ciokorea@foundry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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