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E가 HP에서 분리돼 독립적인 여정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 최고경영자 안토니오 네리는 12월 3와 4일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HPE의 주요 연례 유럽 행사 무대에 올랐다. 네리는 이 자리에서 네트워크, 클라우드, 인공지능(AI)이라는 세 가지 기술 축을 중심으로 한 HPE의 로드맵을 공개했다.
네리는 HPE 디스커버 바르셀로나 2025 행사에 참석한 6,000여 명의 청중을 향해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성과가 매우 자랑스럽다”라며 “앞으로 펼쳐질 변화는 더욱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HPE가 제시한 세 축의 전략은 오늘날 기업이 직면한 핵심 IT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네리에 따르면 기업들은 여전히 레거시 인프라 처리, 데이터 주권 확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비용 관리, AI 확산으로 높아진 컴퓨팅 수요 등의 도전에 맞서고 있다.
특히 주니퍼네트웍스(Juniper Networks)를 지난해 7월 인수하며 크게 강화된 네트워크 기술은 이번 바르셀로나 행사에서 핵심 요소로 부각됐다.
주니퍼의 전 CEO이자 현재 HPE 네트워킹 사업 총괄을 맡고 있는 라미 라힘은 행사에 참석해 양사 통합의 첫 기술 성과를 소개했다. 양사의 네트워크 관리 플랫폼에 새로운 AI 기반 운영 기능을 통합하고, 공동 하드웨어를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다.
라힘은 “지금처럼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높아진 시기는 없었다”라고 말하면서, 이제 네트워크의 목표는 단순 연결이 아니라 ‘자율적 관리’라고 설명했다. 그는 네트워크가 스스로 구성·최적화·복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AI로 설계되고 AI를 위한 네트워크가 증가하는 기기 연결, 복잡해지는 환경, 고도화되는 보안 위협을 처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네리는 “라미와 내가 가진 공통의 목표는 네트워킹 분야에서 새로운 리더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니퍼 인수 후 5개월 만에 HPE가 이미 이전 경쟁사였던 주니퍼 기술과 2015년 인수한 아루바 솔루션을 결합한 커넥티비티 제품을 시장에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양사가 각각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구분되지 않을 것”이라며, “기본적인 이중 설계를 이미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두 조직이 얼마나 빠르게 하나로 융합되고 있으며, 동시에 HPE의 혁신 역량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라고 덧붙였다.
HPE의 주니퍼 인수, 복잡한 과정을 거치다
140억 달러(약 20조 원) 규모의 HPE의 주니퍼 인수는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매우 복잡하고 긴 여정이었다. 2024년 1월 인수 계획이 발표됐지만 최종 거래는 2025년 7월에 이르러서야 마무리됐다. 미국에서는 특히 논란도 적지 않았다. 미국 법무부(DOJ)가 이번 인수가 네트워크 장비 시장, 특히 무선랜(WLAN) 분야의 경쟁을 약화시킨다며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번 인수 승인 과정에서 겪은 난관과 여전히 남아 있는 미국 내 비판에 대해 파운드리 산하 언론사 컴퓨터월드의 질문을 받은 네리는 먼저 “미국을 제외한 국가에서는 통상적인 6개월 내 승인이 완료됐다”라고 설명했다. 2024년 여름에는 3개국만 승인이 남아 있었고, 그중 2개국은 다음 3개월 내 승인을 마쳤다는 것이다. 네리는 미국의 경우 “선거와 행정부 교체라는 변수가 있었고, 이후 절차가 다시 진행됐다”라고 덧붙였다.
네리는 이번 사례를 분석하면서 “미국 법무부는 캠퍼스와 지사 시장, 특히 무선 분야에서 경쟁사가 3곳에서 2곳으로 줄어들 것으로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시장은 그보다 훨씬 크다는 게 네리의 설명이다. 그는 “미국 시장만 보더라도 시스코, 주니퍼, HPE, 캄비움네트웍스(Cambium Networks), 유비쿼티(Ubiquity), 아리스타(Arista) 등 7~8개 업체가 경쟁하고 있다”라며 산업군별로 강점이 다르고 대기업 시장과 공공 부문에서도 경쟁 구도가 다르다고 언급했다. 이어 “여러분(기자들)이 보도하는 시장점유율만 봐도 시장 규모가 크고 매우 분산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결국 미국 법무부와는 “상호에 도움이 되는 건설적인 과정을 거쳤다”라고 네리는 설명했다. 그는 “이번 인수 시장은 경쟁을 촉진하는 환경임을 입증했다”라며, 미국의 대형 M&A 최종 심사 단계에서도 고객이나 경쟁사로부터 어떠한 이의 제기도 받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AI와 클라우드에 집중되다
바르셀로나에서 네리는 최근 몇 달 동안 HPE가 클라우드와 AI 분야에서 이뤄낸 기술적 진전을 강조했다. 그는 AI를 “전형적인 하이브리드 워크로드”라고 규정하면서, 두 기술이 불가분하게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네리는 사용량 기반 모델로 시작해 현재 전 세계 4만 6,000명 고객을 확보한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플랫폼 그린레이크(GreenLake)를 소개하며, 여기에 자율 에이전트 기반 프레임워크 ‘그린레이크 인텔리전스(GreenLake Intelligence)’와 같은 AI 기능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기능은 지난 6월 HPE가 발표한 것으로,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환경에서 IT 운영을 자동화하고 단순화하는 데 초점을 둔다. 네리는 “IT 운영 단순화의 미래가 이미 도착했다”라고 말했다.
네리는 또 HPE의 에어갭 기반 프라이빗 클라우드 전략이 EU처럼 규제가 강한 지역, 그리고 군과 같이 민감 데이터가 중요한 전략 분야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네리는 바르셀로나에서 공개된 또 하나의 솔루션에도 주목했다. AMD의 ‘헬리오스(Helios)’ 랙 스케일 AI 아키텍처가 이더넷 네트워킹과 통합된 첫 사례다. 그는 이 솔루션이 주니퍼의 연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브로드컴 토마호크6 네트워킹 칩을 결합해 “수조 개 매개변수 모델의 학습 트래픽, 높은 추론 처리량, 초대형 모델을 지원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구성은 HPE 서비스팀이 공급한다.
네리는 또한 슈퍼컴퓨팅 분야에서 HPE가 보유한 강력한 입지도 강조했다. 이는 2019년 슈퍼컴퓨터 전문 기업 크레이(Cray)를 인수하며 확보한 기반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HPE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슈퍼컴퓨터 6대를 구축한 기업이며 이 분야의 글로벌 선도 기업”이라고 말했다. 다만 “AI 수요가 그 어느 때보다 커졌지만 모든 기업이 이를 처리하기 위해 슈퍼컴퓨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모든 기업에는 안전한 AI 스택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HPE는 이러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엔비디아와 협력해 프라이빗 클라우드 환경에서 생성형 AI 애플리케이션 개발·배포를 가속화하는 통합 인프라 솔루션 ‘HPE 프라이빗 클라우드 AI’를 제공하고 있다. 네리는 이 솔루션이 “법적 데이터 요구사항을 충족하며”, 동시에 AI 혁신의 핵심 과제인 “시간, 비용, 위험”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기에 더해 HPE가 최근 엔비디아와 AMD와 함께 AI 구축을 가속화하는 고성능 네트워킹 솔루션을 추가했다고 바르셀로나에서 밝혔다.
본사업 기반 성장과 M&A 기반 확장
HPE가 지난해 9월 회계연도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제시한 전망에 따르면, 회사는 2025 회계연도(10월 31일 종료) 매출이 고정 환율 기준 14~16%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24 회계연도 매출은 301억 달러(약 44조 원)로, 2023년 대비 3.4% 증가했다.
네리의 리더십 아래 HPE는 총 35건의 인수를 진행했다. 네리는 바르셀로나 기자회견에서 이를 직접 상기시키며, 앞서 언급한 주니퍼네트웍스와 크레이 외에도 여러 주요 인수를 나열했다.
2020년에는 SD-WAN 기업 실버피크(Silver Peak)를, 2021년에는 데이터 보호 및 재해복구 기업 제르토(Zerto)를 인수했다. 2023년에는 보안 및 IT 운영 분야의 액시스시큐리티(Axis Security)와 옵스램프(OpsRamp)를 추가했으며, 2024년에는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관리 기업 모르페우스데이터(Morpheus Data)를 인수했다.
네리는 “우리는 포트폴리오를 보완하고 목표 시장에서 규모를 확장할 수 있는 적절한 자산을 찾고 있다”라며 “이 자산은 매출과 수익 측면에서 타당해야 하며, 동시에 주주들에게 가치도 제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dl-ciokorea@foundry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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