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와 1970년대 초, 크라이슬러는 머슬카의 제왕이었다. 회사는 425마력을 웃도는 V8 엔진을 장착한 닷지 차저와 플리머스 바라쿠다를 선보였다. 크고, 빠르고, 세련된 이 차량들은 크라이슬러를 미국 문화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크라이슬러는 이 성공에 안주하며 머슬카에 더 집중했다.
그러나 크라이슬러의 전성기를 만든 전략이 동시에 몰락의 씨앗이 되었다. 연료 효율이 낮은 대배기량 차량에 집착한 결과, 연료비가 급등하자 시장이 원하는 소형·고효율 자동차 흐름을 놓쳤다. 1979년 크라이슬러는 파산 위기에 몰려 미국 정부로부터 약 15억 달러의 긴급 구제금융을 받았다.
이때 자동차 업계의 베테랑 리 아이아코카가 CEO로 부임해 회사를 구했다. 아이아코카는 기존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서민형 중저가 모델에 집중했다. K카 시리즈는 큰 인기를 얻었고, 미니밴은 완전히 새로운 가족용 차량 시장을 열어 수백만 대가 팔렸다.
성장은 과거의 강점을 내려놓고 방향을 바꾸는 데서 시작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단순한 결정이 아니다. 성공을 안겨준 전략과 전문성을 스스로 의심하고, 익숙한 영역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생성형 AI가 산업 전반을 빠르게 재편하는 상황에서 과거의 공식에 매달리는 태도는 몰락을 더욱 앞당길 수 있다.
GTA(Global Tech Advocates) 산하 퓨처 오브 워크의 공동 설립자인 졸탄 바스는 “적응력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깊은 전문성도 여전히 필요하지만, 적응하지 못하면 리더와 조직 모두 순식간에 시대에 뒤처진다”라고 말했다.
파운드리의 ‘2025 CIO 현황 조사’에 따르면, CIO의 80% 이상이 현재 자신의 역할이 단순한 IT 운영이 아닌 혁신과 변혁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답했다. CIO는 이에 맞춰 전략을 재조정하고 팀을 재교육하며, 사용하는 기술 도구 전반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오늘날 CIO를 구분 짓는 것은 기존 전략이 통하지 않을 때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고, 위험과 기회를 균형 있게 다루며, 불확실성 속에서도 조직을 이끌 수 있는가 하는 능력이다.
계산된 접근 방식
이론적으로 ‘적응’은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 CIO가 언제, 어떤 기준으로 익숙한 도구나 절차를 버려야 하는지는 복잡한 문제다. 결정은 직감이 아닌 보안, ROI, 확장성, 컴플라이언스 같은 명확한 기준 위에 이뤄져야 한다.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는 체계적인 의사결정 틀과 이해관계자에게 이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다.
UCaaS 플랫폼 업체 와일딕스(Wildix)의 CIO 디미트리 오슬러는 “기준이 명확하면 솔루션 업체의 제안에 ‘아니오’라고 하거나 CEO에게 ‘아직은 아니다’라고 말하더라도, 그 이유가 측정 가능해지고 납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오슬러는 모든 조정은 반드시 측정 가능한 결과와 연결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업무 시간 단축, 고객 만족도 향상, 매출 증대 등이다.
어떤 도구나 프로세스를 유지하고 버릴지를 판단하는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이버보안 기술 업체 릴리아퀘스트(ReliaQuest)의 CTO 조 파틀로는 “CIO가 기존 기술을 한꺼번에 교체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필요는 없다. 어떤 시스템도 충분한 영향 평가 없이 폐기돼선 안 되며, 다른 프로세스가 중단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유연성을 높이는 한 가지 방법은 변화하는 상황, 즉 시장 압력, 규제 변화, 신기술 등장에 맞춰 조정 가능한 모듈형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오슬러는 “우리는 새로운 AI 에이전트를 기존 플랫폼에 쉽게 추가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핵심 원칙은 동일하다. 작게 시범 운영하고 효과를 입증한 뒤, 검증되면 빠르게 확장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파틀로와 오슬러 모두 리더가 신기술에 열린 태도를 유지하고, 팀이 자유롭게 새로운 아이디어나 대안을 실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슬러는 “호기심은 가장 실용적인 습관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기 전에 먼저 직접 테스트한다. 또 가장 먼저 변화를 체감하는 직원, 파트너, 고객의 목소리를 세심히 듣는다”라고 말했다.
모든 실험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슬러는 “더 이상 가치가 없어진 아이디어라면, 자신이 직접 추진했던 것이라도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는 겸손함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CIO는 실험과 의사결정 과정이 정신적으로 소모적일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졸탄 바스는 “적응력은 에너지와 명료함, 회복탄력성을 요구한다. 이런 역량은 스스로 재충전할 시간을 가질 때 비로소 생긴다”라고 덧붙였다.
과대평가된 조언
모든 ‘적응력’ 관련 조언이 따를 만한 것은 아니다. ‘빠르게 실패하라(fail fast)’ 같은 문구는 영감을 주지만, CIO의 판단을 흐릴 수 있다. 이런 조언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다 보면 조직이 너무 많은 일에 얕게 관여하고 유행만 좇으며, 진짜 우선순위를 잃을 위험이 있다.
와일딕스의 오슬러는 “가장 과대평가된 조언은 ‘새로운 것은 무엇이든 즉시 도입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생각이다. 실제로는 무분별한 도입이 기술적·문화적 부채를 낳아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라고 지적했다.
“끊임없는 조직 개편이 적응력을 높인다”는 통념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오슬러는 “변화를 위한 변화는 팀을 더 민첩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정하게 만든다”라며, 진정한 적응력은 각 변화가 분명한 목적과 연결될 때 생긴다고 강조했다. 또, “그렇지 않으면 단지 ‘움직이고 있을 뿐’ 진전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소프트웨어 개발사 앰플리튜드(Amplitude)의 CIO 댄 카펜터는 지나친 유연성 또한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카펜터는 “CIO가 지나치게 유연하면 초점을 잃고 신뢰를 잃게 된다. 설정한 목표와 비즈니스 우선순위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라며, “사업 우선순위에 과도하게 맞추려다 보면 정작 납기와 성과를 놓치게 된다”라고 말했다.
조직 문화의 문제
적응력은 훈련을 통해 기를 수 있는 능력이지만, 많은 조직은 CIO에게 이를 스스로 터득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체계적인 교육이나 지원 없이 혼자 감당하게 만들면 결국 소진 상태에 빠지기 쉽다.
유니버시티 캐나다 웨스트의 부학장이자 부교수인 미트라 마단치안은 “적응력은 리더에게 요구할 수 있는 자질이 아니라, 조직 전체 시스템 안에서 함께 길러야 하는 문화”라고 지적했다.
마단치안은 적응력을 키우는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지속적 학습 문화’를 꼽았다. 모든 구성원이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는 기대가 조직에 내재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는 혼란이 아니라 기회로 인식되어야 하며, 수평적 조직 구조는 빠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고, 직원이 변화에 자신 있게 대응하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편안하게 시도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전한 공간이란 개념을 수용하는 조직은 구성원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우려를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반대로 두려움과 침묵의 문화가 자리 잡으면 혁신이 사라지고, 결정적인 순간에 조직이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 연구 결과도 명확하다. 마단치안은 “호기심, 회복 탄력성, 협력적 문제 해결을 장려하는 조직이 AI가 이끄는 지속적 변화를 훨씬 더 잘 흡수하고 적응한다”라고 분석했다.
적응형 리더를 육성하려면 기술적 이해와 인간 중심 역량 개발을 병행해야 한다. 우선 AI를 비롯한 디지털 활용 역량을 키워야 정보에 기반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다음으로 시스템 사고를 훈련해 변화의 상호의존성과 파급효과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적응력 교육 과정에는 비판적 사고와 의사결정 훈련도 포함돼야 한다. 마단치안은 “회복력과 민첩성은 시나리오 기획, 위기 시뮬레이션, 낯선 문제 해결 훈련을 통해 강화할 수 있다. 또한 데이터, 프라이버시, 공정성과 관련된 복잡한 딜레마를 다루기 위해 윤리적 의사결정을 교육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카펜터는 자신의 경력 초기에 배웠다면 좋았을 두 가지 기술을 꼽았다. 첫째는 이해관계자 관리다. 카펜터는 “이해관계자와 연결되지 않거나 우선순위를 명확히 소통하지 않으면, 결국 리더는 언젠가 큰 문제를 맞게 된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시간 관리 능력이다. 카펜터는 “현실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는 전략적 시간 관리 능력이 필요하다. 시간을 잘 관리하면 과도한 약속과 목표 미달을 피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기술 컨설팅 기업 넥세리(Nexery)의 연구자이자 대표 파트너인 토비아스 보크는 “리더는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견디는 법을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과 기계가 함께 일하는 다기능 팀을 이끄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보크는 “5년 후의 직장은 인간과 AI가 공존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이 될 것이다. AI가 조정 비용을 낮추기 때문에 조직의 위계는 평탄해지고, CIO는 인간과 기계 협업을 조율하는 지휘자로 진화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마단치안은 “새로운 세대는 일의 방식에서 대전환을 겪게 될 것이다. CIO가 그 최전선에 설 것이다. 가까운 미래의 직장은 지능적이고, 적응적이며, 상호 연결될 것이다. 하지만 그 성공은 첨단 기술을 인간적인 리더십과 융합할 수 있는 CIO에게 달려 있다”라고 강조했다.
dl-ciokorea@foundry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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