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조직일수록 오히려 창출하는 가치는 가장 적은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역설은 AI가 실제로 가치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논쟁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인 질문이 아니다. 업무 단위에서는 이미 충분한 근거가 축적돼 있다. 코딩, 글쓰기, 분석, 고객 지원 등 다양한 영역에서 AI가 측정 가능한 생산성 향상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성과가 기업 전체의 재무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MIT 연구에 따르면 전체 AI 파일럿 프로젝트의 95%가 초기 단계에서 손익계산서(P&L)에 의미 있는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맥킨지 역시 전체 응답 기업 가운데 약 6%에 해당하는 고성과 기업만이 AI를 통해 EBIT의 5% 이상을 창출했다고 분석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AI 전환 프로젝트의 약 60%가 제한적이거나 실질적인 가치 창출에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결국 공통된 흐름은 분명하다. 파일럿 단계에서는 성과가 확인되지만, 이를 조직 전체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가치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한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AI 도입 격차는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미국 중소기업청(SBA)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11월부터 2025년 8월까지 AI 도입률은 양측 모두에서 꾸준히 증가했다. 대기업은 6% 미만에서 12% 이상으로, 중소기업은 약 4%에서 8% 이상으로 상승했다. 여전히 대기업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의 도입 속도가 빨라지면서 격차는 점차 축소되는 추세다.
‘엣지’에선 작동, ‘코어’에선 정체되는 AI
대기업에서 AI 도입률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운영 환경에 들어간 AI는 쉽게 자리 잡지 못한다. 수십 년간 축적된 시스템과 규제 체계, 다층적인 거버넌스, 그리고 부서 간 복잡한 의존성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AI는 도입 이후 보안 검토, 구매 절차, 법률 심사, 아키텍처 위원회 검토, 레거시 시스템 연동 제약 등 다양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각각의 절차는 필요에 의해 존재하지만, 이들이 결합되면 변화 속도를 늦추고 효과를 분산시키는 요인이 된다.
특정 부서 단위에서는 AI 파일럿이 성과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조직 전체로 확장하려는 순간 기존 운영 모델과 충돌한다. 데이터 소유권, 책임 구조, 의사결정 권한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확장 비용은 더욱 커진다. 결국 제한된 환경에서 효과를 보였던 AI는 조직 단위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멈춰 서고, 기대했던 가치는 규모화 과정에서 사라진다.
중소기업 역시 나름의 어려움을 안고 있다. 자금 흐름 제약, 제한된 인력, 고객 리스크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거부 지점’은 상대적으로 적다. 예를 들어 창업자가 AI 기반 견적 자동화나 후속 고객 응대 시스템을 실험하기 위해 별도의 범부서 위원회를 구성하는 경우는 드물다.
의사결정은 빠르게 이뤄지고, 피드백도 짧은 주기로 반복된다. 직원 한 명이 전체 생산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변화의 효과도 즉각적으로 드러난다. 5명 규모 기업이 행정 업무의 20%를 자동화하면, 그 성과는 곧바로 측정 가능하다.
이들의 구조적 강점은 ‘단순함’이다. 레거시 시스템이 적고 의사결정 경로가 짧으며, 다층적인 거버넌스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SaaS 기반 솔루션도 빠르게 도입하고 큰 마찰 없이 통합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이 더 나은 의사결정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행 속도를 높이는 데는 분명한 이점으로 작용한다.
AI ROI의 본질은 ‘조직의 준비 상태’
반대로 대기업은 높은 수준의 시스템 통합 요구와 정교한 거버넌스, 분산된 책임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는 운영 리스크를 줄이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새로운 기술 역량을 실제 재무 성과로 전환하는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 된다. AI 파일럿이 기술적으로는 충분한 가능성을 입증하더라도, 기업 전체의 경제적 성과를 끌어올리는 데는 실패하는 이유다.
이 때문에 경영진은 본질적인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를 회피하려 한다. AI ROI를 단순한 기술 문제로 규정하면 IT 조직이나 데이터 팀, 혁신 부서에 위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조직 설계의 문제로 접근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는 전사적인 변화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
AI는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기보다 오히려 증폭시키는 성격을 갖는다. 의사결정 권한이 불명확하면 그 문제가 더욱 선명해지고, 데이터 거버넌스가 취약하면 리스크는 확대된다. 보상 체계가 어긋나 있다면 그 불균형 역시 더 빠르게 심화된다. 결국 업무 단위에서의 생산성 향상이 기업 전체의 수익성 개선으로 자동 연결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인터넷 도입 초기에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났다. 기술 자체는 정상적으로 작동했지만, 기존 구조 위에 이를 덧붙인 기업이 아니라 조직을 재설계한 기업이 더 큰 성과를 거뒀다.
현재 AI 역시 같은 패턴을 보이고 있다. ROI를 제한하는 요인은 모델 성능이 아니라, 변화를 수용하고 확장할 수 있는 조직의 준비 상태다.
따라서 질문은 “AI가 왜 ROI를 만들지 못하는가”가 아니다. ROI는 AI가 아니라 조직이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질문은 조직이 일하는 방식과 의사결정 구조, 거버넌스, 성과 측정 방식을 재설계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있다.
이러한 변화가 없다면 AI는 주변 업무의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조직이 이를 수용할 수 있다면, AI는 지속 가능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게 된다.
dl-ciokorea@foundry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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