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는 유럽에서 가장 야심 찬 데이터 프로젝트로 평가받는 연합 데이터 플랫폼(Federated Data Platform)을 출범했다. 이 이니셔티브는 분산돼 있던 환자 데이터를 연결해 계획 수립의 정확도를 높이고 대기 시간을 줄이며, 보다 근거 있는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문서상으로만 보면 결함을 찾기 어려운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프로젝트는 시작 단계부터 의사 단체와 환자 단체 모두의 반발에 직면했다. 당국은 효율성과 자원 활용을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의사와 환자 단체는 감시 강화와 통제권 상실을 우려했다. 이런 인식 차이는 공동의 이해를 형성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프로젝트 전반의 추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는 의료 분야의 사례지만, 다른 산업에 몸담은 CIO 역시 논리적으로는 탄탄한 이니셔티브가 기대와 달리 과도한 마찰을 겪는 상황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언어를 쓴다는 착각
CIO는 비즈니스의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많은 CIO가 다른 부서의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익히고, 기술 중심의 전문 용어 사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사결정이 지연되거나 장애물이 발생하고, 논의가 더디게 진전된다. 모두가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대화가 원활하게 이어지지 않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여러 사람이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같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치’라는 단어는 보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재무 부서에서 마진을, 영업 부서에서는 성장을, 운영 부서에서는 연속성을 의미한다. ‘긴급성’, ‘위험’ 같은 단어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점검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은 각 조직이 일치돼 있다는 착각을 낳고, 그에 따른 리스크 역시 그대로 남는다.
단어 아래에 숨겨진 사람의 이해 방식
그렇다면 의미에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어휘나 표현의 정확성 문제가 아니다. 단어는 겉으로 드러나는 표면에 불과하며, 실제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각자가 그 단어에 부여하는 맥락과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각 조직 또는 개인은 가치관, 신념, 인식 등으로 구성된 고유한 기준 안에서 움직인다. 이 때문에 어떤 메시지나 제안이든 각 이해관계자가 다른 관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때 우려와 우선순위가 드러나고 이니셔티브의 향방이 정해지며, CIO가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는 협력자로 받아들여질지, 아니면 알아듣기 어려운 방식으로만 말하는 인물로 인식될지가 결정된다.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도구인 ‘경청’
NHS 사례에서, 영국 내 의사와 의료 전문가를 대표하는 단체인 영국의사협회(BMA) 회장은 정부에 서한을 보내 대중과 의료계 모두가 충분히 의견을 전달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한 신뢰 문제는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 지점에서 이니셔티브가 받아들여지기 위해 필요한 핵심 역량이 분명해진다. 바로 경청이다. 기업 내에서의 발언은 종종 경쟁의 수단이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을 강조하고, 특정 주장을 방어하며, 의제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발언한다. 반면 듣기 위해 경쟁하는 경우는 드물다. 진정한 영향력은 대개 경청할 줄 아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경청은 단순한 예의를 넘어 맥락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경청을 통해 논쟁의 소지가 있는 관점이나 성공에 대한 또 다른 해석, 그리고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비즈니스의 언어를 말하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경청은 보다 정교한 질문을 던지고, 가치 중심의 실행 방식을 추구하는 역량을 키우는 데도 유용한 도구다. CIO가 이러한 접근을 실무에서 적용할 수 있는 3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핵심 키워드 명확히 하기
서로 다른 해석을 쉽게 낳는 단어가 무엇인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해당 단어의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즉, 특정 단어가 상대방이나 다른 부서에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는지를 직접 묻는 방식이다. 이러한 질문은 다른 조직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드러내고, CIO가 섣불리 추측하는 일을 막아준다.
성공의 기준 정의하기
좋은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해 합의를 이루는 과정도 중요하다. 어떤 KPI가 이니셔티브의 성공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지,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할 것인지, 허용 가능한 타협과 그렇지 않은 조건은 무엇인지 등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러한 한계를 분명히 설정함으로써 CIO는 공통의 기준을 마련하고, 각자가 자기 기대에 따라 성공을 해석하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다.
마무리 전 점검하기
회의가 끝날 때 메시지가 어떻게 전달됐는지를 점검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참석자에게 프로젝트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이해했는지,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지, 어떤 리스크를 예상하는지를 말로 정리해 달라고 요청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말로 드러나지 않았던 해석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응이 가능해진다.
결국 이런 질문은 단어가 실제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해 나가는 과정이다.
번역가에서 조직 연결의 핵심으로
그동안 CIO에게는 기술과 비즈니스 사이의 번역가 역할이 필수적으로 요구돼 왔다. 이는 기술 용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주요 과제였던 시기에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접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서로 다른 현실을 조율하는 일이 핵심이 됐다.
CIO의 영향력은 어휘를 늘리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조직 간 서로 다른 문화와 사고의 틀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실제로 운영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 비즈니스 부서는 CIO가 자신들의 압박과 성과 지표, 그리고 불안 요소까지 이해하고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같은 편에 서있는 인물로 인식하며, 이런 순간에 협력 관계가 형성된다.
공동의 이해가 쌓이기 시작하면 다음 질문도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CIO는 이제 기술과 비즈니스를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 그리고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새롭게 고민할 수 있다.
dl-ciokorea@foundryco.com
Read More from This Article: 칼럼 | 같은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 이유···CIO의 영향력이 시작되는 지점
Source: New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