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구축된 버밍엄 시의회(Birmingham City Council, BCC)의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이 대규모 IT 프로젝트의 실패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결제와 인사 업무를 효율화하기 위해 도입된 이 시스템은 2022년 출시 이후 4년이 지난 2026년까지도 정상 작동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다.
이 프로젝트는 시의회의 구형 SAP 시스템을 오라클 클라우드로 교체하는 작업이었다. 초기 투자금은 4,800만 달러(한화 약 688억 원)였으나, 재구현 비용이 포함되며 1억 1,400만 달러(약 1,634억 원)로 증가했다. 이는 대규모 기업용 소프트웨어 프로젝트가 얼마나 쉽게 통제 불능 상태가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그랜트손튼은 감사 보고서를 통해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관리 실패의 중요한 사례가 됐는지를 설명했다. 특히 시의회의 핵심 운영에 계속 영향을 미치는 거버넌스, 기술 감독, 벤더 관리에서의 중대한 실패를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시스템 구현 실패로 시의회의 재무 관리와 운영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졌다. 이로 인해 시스템을 전면 재구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으며, 이 과정에서 당초 예산의 2배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비용 초과와 지연··· 무엇이 문제였나?
감사 결과 프로젝트 예산이 초기 1,900만 파운드에서 9,000만 파운드 이상으로 증가했으며, 지연으로 인해 시스템의 완전한 기능 구현이 당초 계획된 2022년보다 4년이 늦은 2026년으로 미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오라클 시스템과의 통합이 예상보다 복잡해 장기간의 테스트와 비용 증가를 초래했다”라고 지적했다. 급여 통합 문제, 데이터 이전의 양과 품질 문제로 인해 광범위한 재테스트가 필요했고, 이로 인해 비용이 더욱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또한 외부 컨설턴트와 오라클에의 과도한 의존이 양날의 검이 됐다. 서드파티 전문성은 필수적이었지만, 이것이 동시에 프로젝트의 재무적, 운영적 결과에 대한 내부 통제 역량을 약화시켰다고 그랜드손튼은 분석했다.
그랜드손튼은 “외부 지원에 대한 시의회의 의존이 재무 통제 수준을 약화시키고 비용을 증가시켰다”라면서, 라이선싱과 커스터마이징 비용이 예산에 추가 부담을 줬다고 지적했다.
거버넌스-전문성 격차
조사 결과 시의회의 거버넌스 구조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ERP 구현 실패의 핵심에 ‘거버넌스-전문성 격차’가 있었다는 평가다. 그랜드손튼은 책임 감독들의 기술적 이해도가 너무 낮아 발생한 문제이며, 특히 시의회의 디지털 부서에 오라클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에 프로젝트 책임자들이 시스템 구축 파트너사의 업무를 제대로 평가하고 문제를 제기할 기술적 역량이 부족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거버넌스-전문성 격차로 시의회가 ‘현명한 고객’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시스템 통합 파트너인 에보시스(EvoSys)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또한 기술적 감독 부재로 인해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시의회는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라는 자체 원칙을 어기고, 기존 SAP 시스템 기반의 업무 방식에 맞추기 위해 과도한 시스템 수정을 허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젝트 후반부에는 핵심 기능에 대한 변경 요청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면서 불필요한 복잡성과 리스크가 가중됐다.
시의회의 거버넌스 접근 방식에는 자체적인 감독 체계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복잡하고 중요한 프로젝트였음에도 시스템 가동 직전까지 내부 감사가 한 번도 실시되지 않았다. 뒤늦게 실시된 내부 감사에서 주요 문제점이 발견됐지만 결과가 무시됐다. 보고서는 이를 시의회의 위험 관리 체계가 근본적으로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이번 감사가 버밍엄 시의회의 ERP 구현 시스템 결함을 지적한 첫 사례는 아니다. 이미 2023년 6월 시의회의 한 관리자가 문제점을 상세히 기록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여러 차례 경고성 보고가 있었다.
벤더 관리 위기
그랜드손튼은 시스템 통합 파트너인 에보시스와의 관계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벤더 관리가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보여준다고 언급했다. 에보시스가 시의회에 수석 이사를 자문역으로 보내고 시스템 가동을 추천했으나, 실제 프로젝트 회의록과 문서를 살펴보면 핵심 논의 과정에 거의 참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려되는 부분은 맞춤형 은행 조정 시스템(BRS)다. 시의회는 2022년 4월 시스템의 전산 처리 오류를 발견했으며, 이는 구현 이후 한 번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에보시스는 지원 계약이 종료된 후인 2023년 1월에야 이 문제를 통보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시의회와 주요 벤더 간의 심각한 의사소통 단절을 보여준다.
침묵과 억압의 문화
보고서가 지적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나쁜 소식을 꺼리는 조직 문화”였다.
감사 결과, 모든 보고에서 낙관적인 관점만 제시됐으며 심각한 위험과 문제점은 주목받지 않을 보조 자료에 숨겨져 있었다. 직원들의 우려 제기도 체계적으로 축소되거나 무시됐다. 보고서는 “제기된 우려 사항들이 의원, 직원, 프로젝트팀 등 모든 직급에서 묵살되거나 축소됐다”라고 지적했다.
조사에 의하면 이런 억압 문화가 후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문제를 조기에 파악하고 완화할 기회를 놓치게 한 원인이었다.
변화 관리에서 간과된 주요 항목
변화 관리에 대한 시의회의 접근방식은 기업용 소프트웨어 구현에서 흔히 발생하는 오해를 보여준다. 즉, 사용자 교육과 이해관계자 참여를 주요 항목이 아닌 부차적인 고려사항으로 취급한 것이다.
이에 따라 실제 시스템 구성을 반영하지 않는 교육 프로그램, 주요 이해관계자 그룹의 늦은 참여, 업무 프로세스 변경에 대한 관심 부족 등의 결과가 나타났다.
기술 전문가는 단순히 자문 역할이 아닌 거버넌스 구조 내에 포함돼야 한다. 또한 문화적 변화가 기술 변화에 선행돼야 하며, 벤더 관계에는 구조화된 의사소통 체계와 명확한 책임 조치가 필요하다. 변화 관리는 주요 프로젝트 업무 흐름으로 격상돼야 한다.
버밍엄 프로젝트의 차질은 광범위한 결과를 초래했다. ERP 비용은 시의회의 재정 상태를 극도로 악화시켰으며, 2023년 9월 파산 선언의 원인이 됐다.
야당 지도부는 이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BBC에 따르면 버밍엄 지역 보수당 대표인 로버트 알덴은 “이는 대규모의 책임 회피였으며, 비용은 다시 한번 버밍엄 주민들에게 전가되었다”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2024년 4월부터 세금이 7.49% 인상될 예정이며, 이로 인해 대중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구현 과제
버밍엄 시의회의 ERP 재구현 사업은 IT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중요 시험대가 되고 있다. 2번째 시도의 성패는 단순히 기술적 문제 해결을 넘어, 첫 실패의 원인이 된 조직 문화와 업무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 여부에 달려 있다.
ERP 기능의 완전한 구현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시의회는 감사에서 지적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BBC 보도에 따르면 시의회 대변인은 “거버넌스를 크게 강화하고 시스템 문제를 해결했으며,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우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공공 부문 조직들이 점점 더 디지털 솔루션을 도입함에 따라, 버밍엄 시의회의 ERP 구현 사례는 성공에 있어 첨단 기술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거버넌스, 숙련된 프로젝트 관리, 현실적인 기대치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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