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는 금요일 인공지능 기업 앤트로픽(Anthropic) 제품을 연방 기관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추진했다. 민간 AI 기업이 미군의 시스템 활용 범위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갈등을 보다 분명히 드러내는 조치로 풀이된다.
이후 몇 시간 뒤, 경쟁사 오픈AI(OpenAI)의 CEO 샘 알트먼은 자사가 국방부에 기술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로는 군이 앤트로픽에 요구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과 동일한 조건이라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루스소셜 게시글에서 앤트로픽을 ‘좌파 급진주의자’라고 지칭하며 “모든 연방 기관이 즉시 앤트로픽 기술 사용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국방부는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supply chain risk)’으로 지정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이 표현은 중국 화웨이의 통신 장비처럼 해외 경쟁국 기술에 주로 적용돼 왔다.
이번 결정은 국방부가 요구한 ‘모든 합법적 목적(all lawful purposes)’ 조항을 둘러싸고 앤트로픽과 미 국방 장관 피트 헤그세스 사이에 벌어진 이례적으로 공개적인 충돌 이후 내려졌다. 해당 조항은 군이 AI 모델을 라이선스할 경우, 벤더가 설정한 안전 정책에 구속되지 않고 모든 합법적 임무에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헤그세스 장관은 X에 “앤트로픽 그리고 CEO 다리오 아모데이는 ‘효과적 이타주의’라는 도덕적 수사를 내세워 미군을 압박하려 했다”라며 “이는 실리콘밸리 이념을 미국인의 생명보다 앞세우는 기업의 위선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의 진짜 목적은 미군의 작전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라며 “이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앤트로픽은 27일 성명문을 통해 “국방부나 백악관으로부터 협상 현황에 대한 직접적인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또한 공급망 위험 지정은 “법적으로 타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부와 협상하는 모든 미국 기업에 위험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6개월 전환 시한…클로드 교체 작업 본격화
미 언론사 악시오스에 따르면 국방부는 최대 2억 달러(약 2,900억 원) 규모의 앤트로픽 계약을 종료하고, 방산업체와 협력사에 펜타곤 관련 업무에서 앤트로픽의 ‘클로드(Claude)’ 모델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증하도록 요구할 예정이다. 행정부는 기관과 계약업체가 대체 솔루션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6개월의 유예 기간을 부여했다.
이 전환 과정은 상당한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클로드는 이미 군의 기밀 시스템에 활용되고 있으며, 해당 시스템은 국방부의 핵심 정보 분석, 무기 개발, 작전 계획을 지원하고 있다.
국방 당국은 클로드의 성능을 높이 평가해 왔지만, 기존 업무 흐름에서 이를 분리하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미 행정부가 내세운 쟁점
앤트로픽은 특히 대규모 국내 감시와 완전 자율 무기와 같은 특정 활용은 허용 범위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모데이는 26일 성명문에서 “양심상 해당 안전 장치를 제거할 수 없다”고 밝히며, 현재 AI 시스템은 완전 자율적 치명적 의사결정을 맡기기에 충분히 신뢰할 수준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한 대규모 감시는 심각한 남용 위험을 수반한다고 경고했다.
반면 국방부는 군이 이미 자체 규정과 감독 체계 아래 운영되고 있으며, 특히 ‘감시’와 ‘자율성’의 정의가 논쟁적인 영역에서 벤더의 서비스 약관이 임무 수행을 제약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미국 국가 안보에 미칠 영향
단기적으로 이번 조치는 국방부에 민감한 전환 과제를 안긴다. 생성형 AI를 도입하기 시작한 정보 분석 및 작전 계획 업무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기밀 환경에서 앤트로픽 모델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파장이 더 클 수 있다. 이번 금지 조치는 연방, 특히 국방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모든 합법적 사용’ 조건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는 국가 안보 분야에서 명확한 제한선을 설정하려는 AI 기업의 협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또한 정부가 선도 AI 기업 하나를 민감한 시스템에서 배제할 경우, 기관과 계약업체는 선택 가능한 대안이 줄어들 수 있다. 그 결과 기밀 환경에서 운영 가능한 소수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군 핵심 인프라의 변화가 오히려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상원 정보위원회 부위원장인 마크 워너 상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과 헤그세스 장관의 조치가 국가 안보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워너 의원은 “연방 정부 전반에서 선도적 미국 AI 기업 사용을 중단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와 해당 기업을 향한 공격적 수사는, 국가 안보 결정이 신중한 분석이 아니라 정치적 고려에 의해 이뤄지는 것 아닌지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고 말했다.
그록·오픈AI·구글로 경쟁 구도 이동
이번 결정은 AI 국방 시장의 경쟁 구도를 재편할 가능성이 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xAI는 이미 자사 ‘그록(Grok)’ 모델을 군 기밀 시스템에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앤트로픽과 국방부의 협력 관계가 무너질 경우 xAI가 대체 사업자로 부상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만 국방부가 그록의 기밀 환경 사용을 승인한 가운데서도, 연방 정부 일부에서는 그록의 안전성과 신뢰성에 대한 상당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한 모델을 다른 모델로 교체하는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국방부는 오픈AI와 구글과도 비기밀 시스템에서 활용 중인 모델을 보다 민감한 환경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해 왔다고 악시오스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루스소셜 게시물 이후 7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오픈AI의 샘 알트먼은 엑스에 “국방부와 기밀 네트워크에 자사 모델을 배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다만 국방부는 앤트로픽에 거부했던 조건을 오픈AI와는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알트먼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안전 원칙 두 가지는 국내 대규모 감시 금지와 자율 무기 시스템을 포함한 무력 사용에 대한 인간의 책임 유지”라며 “국방부도 이러한 원칙에 동의하고 이를 법과 정책에 반영하고 있으며, 계약에도 이를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알트먼은 오픈AI가 미국인 대상 대규모 감시와 인간 통제 없는 무기 사용에 대해 ‘레드라인’을 공유하고 있다고 밝혀왔다. 동시에 국방부와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정치권·업계 반발 조짐
경쟁사 내부에서도 이례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구글과 오픈AI 직원 수백 명은 앤트로픽을 지지하는 청원에 서명했다. 군사적 활용을 둘러싼 AI 업계 내부의 긴장을 보여주는 사례다. 업계 전반이 한목소리로 반대할 경우, 앤트로픽에 대한 금지 조치가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카네기멜런대에서 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연구했던 피터 매드슨은 인터뷰에서 “다른 모든 AI 기업도 앤트로픽과 같은 이상을 공유해야 한다”라며 “그래야 트럼프 대통령이 개인적 의지에 굴복하는 기업이 아니라 윤리적 기준을 갖춘 AI 기업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앤트로픽은 진행 중인 임무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환 과정에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공급망 위험’ 지정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설지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향후 전망
이번 결정으로 몇 가지 즉각적인 시험대가 마련됐다.
첫째, 각 기관과 계약업체는 앤트로픽 도구가 자사 운영 체계에 얼마나 깊이 통합돼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동시에 성능 저하나 보안 위험 없이 얼마나 신속하게 다른 솔루션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도 판단해야 한다.
둘째, 경쟁사 역시 쉽지 않은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국방부가 요구하는 ‘모든 합법적 사용’ 조건을 수용할 것인지, 또는 오픈AI처럼 자사의 안전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절충점을 찾을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감시와 자율성, 고위험 환경에서 AI 시스템이 예측 불가능하게 작동할 가능성에 대한 내부·외부의 감시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금지 조치는 앤트로픽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정책 질문을 던진다. 국가 안보를 위해 최첨단 AI를 배치하는 경쟁 속에서 경계를 설정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작전 유연성을 필요로 하는 정부인가, 아니면 기술을 개발하고 접근 권한을 통제하는 민간 기업인가라는 질문이다.
dl-ciokorea@foundry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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