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도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학위 명칭만 보면 당연한 출발점처럼 보인다. 깜박이는 불빛이 달린 상자를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만들고 싶다면, 칩과 화면, 키보드를 문제 해결을 위한 ‘군대’처럼 다루고 싶다면, 컴퓨터공학과 과정은 분명 도움이 된다.
AI를 구동하는 컴퓨터를 완전히 장악하고 싶다면 이름부터 ‘컴퓨터’를 포함한 학문을 공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학은 이미 컴퓨터가 지닌 많은 비밀을 가르치는 훌륭한 교육과정을 구축해왔고, 지난 몇십 년 동안 많은 졸업생이 이 지식을 기반으로 컴퓨터 혁명을 이끌었다. 실제로 그런 성과를 낸 사례도 많다.
하지만 물리학, 회계학, 심지어 철학 등 전혀 다른 전공 출신도 성공을 거둔 사례가 적지 않았다. 학위가 아예 없는 사람도 있다.
기대와 현실의 간극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AI와 LLM이 모든 분야의 규칙을 바꾸고 있고, 소프트웨어 개발은 그 변화가 큰 영역 중 하나이다. AI가 코딩과 IT 업무 전반에 점점 더 깊이 관여하는 시대에 컴퓨터공학과 교육과정은 어떻게 변화해야 장기적으로 관련성을 확보하고 미래 업무에 대비한 인재를 길러낼 수 있을까? 변화가 너무 급격해 기존 과정은 일정 부분이라도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음은 기존 컴퓨터공학과 커리큘럼이 오늘날 컴퓨터를 다루는 현실에 맞지 않는 이유다.
과거부터 이어진 학위 무용론이 지금 더 강하게 드러난다
컴퓨터공학과 과정은 오랫동안 실용성과 관련성에 대한 의문을 받아왔다. 많은 교육 내용이 이론과 학문적 허세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공학 학위가 정말 필요한가에 대한 기존의 문제 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컴파일러를 배우는 일은 많은 학생에게 여전히 불필요하다. 대학에서는 실용 기술보다 이론적·철학적 요소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학내 정치적 요소가 교육과정 전반을 지배하는 문제도 예전과 다르지 않다. 학위를 딸 필요가 없는 이유는 여전히 존재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두드러지고 있다. 만약, AI가 모든 컴퓨팅 업무의 필수 요소가 된다면, 과거에 머무른 채 낡은 교육과정을 계속 고수하는 방식은 학위를 더 필요 없게 만들 것이다.
AI가 기존 교육이 다루던 세부 작업을 잠식하고 있다
컴퓨터공학과 과정의 중요한 부분은 여러 주요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며 구두점과 함수 정의 같은 세부 요소를 익히는 것이다. 주요 언어를 익히고 나면 ‘대학이니까’라는 이유로 특이하고 생소한 언어까지 배우곤 한다. 이제 이런 일은 LLM이 대신한다.
지난 한 달 동안 필자는 배워본 적 없는 여러 언어로 AI에 “작성해줘”라고 요청하는 방식으로 코드를 만들었다. AI가 가끔 실수하긴 하지만 드문 편이고, 필자는 깊이 파고드는 컴퓨터공학과 과정에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해당 언어로 상당한 생산성을 냈다.
프로그래밍 언어의 엄격함을 배우는 과정 자체가 사라지진 않겠지만, 관용구나 문법, 구두점 같은 세밀한 요소 대부분은 앞으로 기계가 처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언어를 둘러싼 신앙 같은 태도나 구문을 두고 벌이던 논쟁은 점차 사라지고, 사람은 그런 수업을 건너뛰어도 되는 시대가 되고 있다.
컴퓨터공학과 과목 대부분이 구식이 됐다
문법 기초나 세미콜론 위치를 두고 스트레스를 받는 입문 과목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과정 전반이 낡아가고 있다. 기존에 가르치는 사실이 틀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대부분 사람은 이제 그런 내용을 직접 다룰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가끔 어떤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깊이 파고들어야 할 때도 있겠지만, 대부분 경우 프로그래밍 언어, 알고리즘, 네트워크, 자료 구조 등 현재 교육과정에서 배우는 거의 모든 영역을 AI가 대신 처리하게 된다.
AI가 컴퓨터공학과 졸업생의 머릿속을 채우던 세부 작업 대부분을 담당하게 되는 셈이다. 인간은 여전히 큰 구조를 파악하고 창의적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지만, 이런 내용은 4년제 컴퓨터공학과 과정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높은 수준의 전략적 사고를 가르치는 일이 어렵긴 하지만, 학생은 최소한 그 방향으로 시도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컴퓨팅 분야의 발전 속도가 대학 과정에는 너무 빠르다
대학의 전통적 사업 모델은 세상의 기초 지식을 신뢰할 수 있게 보관하고 전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문학이나 역사학처럼 해석은 바뀌어도 본질적 지식은 크게 변하지 않는 영역을 기준으로 설계된 구조다.
하지만 AI 영역에서는 LLM이 매주 바뀔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한 학기가 끝날 즈음이면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마지막 몇 주 강의 계획은 사실상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럼에도 컴퓨터공학과는 학생에게 4년을 등록하라고 요구한다. 입학 전 몇 년 동안 각종 조건을 맞추며 입시 절차를 준비하라고 요구하는 방식도 그대로다.
대학이 앞으로도 실질적 가치를 제공하고 싶다면 빠르게 전환하고 적응해야 한다. 실험실 수업, 실습 중심 과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세미나가 오래 전에 사망한 저자가 쓴 고정된 교재보다 훨씬 유용하다. 교육과정은 세부 내용을 전달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메타 교육과정에 가깝게 설계돼야 한다. 기술 변화 속도가 과거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에 대비하지 못하면 학생은 졸업과 동시에 시대에 뒤처진 인재가 될 수 있다.
학위를 마칠 때쯤 일자리가 남아 있을까?
지난 수십 년 동안 컴퓨터공학과는 기술 인력 수요 증가에 맞춰 꾸준히 확장됐다. AI가 이런 수요를 얼마나 대체할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감소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많은 개발자가 LLM을 보조 도구로 사용했을 때, 생산성이 5배, 10배, 많게는 20배까지 늘었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전 세계가 필요한 개발자 수가 1/5, 1/10, 1/20 수준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생긴다. 물론 기술 발전은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는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내지만, 이번 변화는 규모 자체가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이런 불확실성 앞에서 진화하지 않는다면, 컴퓨터공학과 교육 과정은 학생들에게 어떤 종류의 경력을 준비하라고 할 것인가? 현실적인 기업 연계 인턴십과 실무 협업을 늘리면 학생이 자신의 노력을 어디에 집중해야 졸업 후 실제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지 보다 명확히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초 실력만 갖춘 신입도 이제는 학위 보유자를 앞설 수 있다
컴퓨터공학과 졸업생이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수년간 컴퓨터를 다루는 복잡한 지식을 익혀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AI가 그 복잡한 내용을 대부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은 모호한 요청만으로도 비슷한 성과를 낼 수 있게 됐다.
AI에게 막연한 바람을 이야기하듯 요청하는 것이, 과거 컴퓨터와 씨름하며 쌓은 지식만큼 효과적일 때도 많다. 그렇다면 굳이 공부하고 암기할 이유가 있을까? 똑똑한 신입이 우연히 차세대 히트 제품을 만들 가능성도 충분하다. 뛰어난 개발자가 조금 더 우위에 있긴 하겠지만 그 격차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IT 업계가 물리학이나 수학 전공자도 기꺼이 채용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제는 학창 시절 여러 분야를 조금씩 만져본 사람도 컴파일러를 한 학기 배운 사람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성과를 낼 가능성이 있다. 물론 AI가 처리하지 못하는 특이하고 해석이 어려운 문제를 파악할 ‘전지적’ 컴퓨터 전문가 수요는 남아 있겠지만, 그 외 대부분의 역할은 이제 자동차 보닛 여는 방법조차 모르는 신입에게 맡겨도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다.
컴퓨터공학의 깊은 사유가 필요해지는 일은 드물어지고 있다
일부 컴퓨터공학 분야가 지식의 본질, 자기 인식의 중요성, 수리적 사고의 한계 같은 복잡한 문제를 다룬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영역은 때로 흥미롭고 언제나 깊이가 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원하는 기업은 거의 없고, 그럼에도 교육과정은 이런 내용으로 채워진 경우가 많다.
기업이 원하는 것은 정리된 표 형태의 데이터다. AI도 이 균형을 바꾸지 않는다. AI는 데이터를 표 형태로 가지런히 배열하도록 연결 코드를 작성하는 실용적인 업무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낸다. 최신 LLM이 ‘올바른’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지, 진정한 인공일반지능에 가까워졌는지를 두고 몇 시간씩 토론할 수 있다. 하지만 관리자 입장은 “그런 얘기는 퇴근 후 술집에서 하라”는 것이다.
컴퓨터공학과 과정에서 이런 수학적 성찰을 모두 없애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학습이 경력의 기반보다는 사치에 가까울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AI의 무작위성이 기존 알고리즘 교육을 흔들고 있다
역사적으로 컴퓨터는 철저히 예측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간혹 알파 입자가 비트를 뒤집거나 I/O 오류가 나는 경우를 제외하면, 동일한 입력은 항상 동일한 출력으로 이어졌다. 반면 LLM은 다르게 설계됐다. 알고리즘 내부에 무작위 요소를 포함해 매번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도록 만들어졌다.
이런 구조적 변화 때문에 기존 알고리즘 수업에서 강조하던 기계적 절차는 AI나 LLM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주 공간에서 부유하는 우주비행사에게 중력 수업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중력이 여전히 존재하긴 하지만, 캡슐 안에서 몸을 움직이는 데 큰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컴퓨터공학과 과정은 알고리즘 교육을 재편해야 한다. 앞으로 주요 분야로 자리 잡을 비결정적 컴퓨팅 모델을 익히도록 구성해야 한다.
컴퓨터공학은 점점 더 과학적 성격이 약해지고 있다
초창기부터 많은 교수는 컴퓨터공학의 학문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정리를 세우고 실험을 반복하며 교재를 채워왔다. 이런 노력은 물리학 같은 ‘정통 과학’의 관심까지 불러왔다. 존 홉필드와 제프리 힌튼이 신경망 연구를 바탕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성과가 있다고 해도 LLM이 과학 이론을 구현한다기보다 골드버그 장치(Rube Goldberg machine)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가리지는 못한다. 한 대형 LLM 업체의 솔루션 엔지니어는 최근 “마침표 뒤에 두 칸 띄면 한 칸 띄었을 때와 답변이 다르게 나온다”라고 귓속말로 털어놨다. 어느 프롬프트 엔지니어든 모델이 얼마나 제멋대로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버전 X에서 통하던 프롬프트 전략이 X.1에서는 처참하게 실패하기도 한다. ‘온도’ 값을 조금만 높여도 응답이 난수처럼 튀어버린다.
물론 컴퓨터공학 강의 계획안에는 여전히 ‘과학처럼 보이는’ 내용과 그리스 문자가 가득 채워질 수 있다. 그러나 진짜 교육은 기복 심한 AI를 오랜 시간 직접 만져보며 얻는 경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교육과정도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문예창작과 학위가 더 나은 선택일까?
현대 LLM의 대부분은 단어로 소통한다. 따라서 단어를 잘 다루는 능력이 LLM과 협업하는 핵심 기술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폭넓고 정교한 어휘력, 그리고 상황에 맞는 단어를 정확히 고르는 감각이 성과를 좌우하는 기반이 된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LLM의 거대한 가중치 행렬을 자극하는 최적의 문장 구조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있다. 각 단어가 답변의 방향을 어떻게 바꾸는지 이해해야 한다. 마크 트웨인이 “거의 맞는 단어와 정확한 단어의 차이는 반딧불과 번개의 차이만큼 크다”고 말한 이유다.
컴퓨터공학과가 셰익스피어 수준의 문학 교육을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자연어가 앞으로도 기계와 상호작용하는 핵심 인터페이스라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학생이 이 능력을 제대로 익히도록 자연어 중심의 창의적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그리고 이런 능력을 가르칠 최적의 장소는 컴퓨터 실습실이 아니라 문예창작과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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