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IT, 엔지니어링, 금융, 의학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외국인에게 발급하는 취업 비자인 H-1B는 매년 수만 명의 외국 IT 인력을 유입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는 이를 제한 또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이민 변호사와 전문가들은 최근 트럼프 측근인 일론 머스크와 MAGA의 스티브 배넌 사이에서 H-1B를 두고 설전이 벌어지는 등 논쟁이 계속되고 있으나, 프로그램 자체를 폐지하지는 않고 일부만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과거 H-1B 프로그램에 반대했던 트럼프 대통령도 최근 입장을 번복하고 지지를 표명한 바 있다.
H-1B 프로그램은 수년간 반대 의견에 직면해 왔다. 배넌을 비롯한 반대측은 이 프로그램이 미국인의 고임금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지적하면서, IT 기업이 미국 직원을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로 대체하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악용한다고 비난했다. 반면 찬성측은 미국이 IT 산업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의 우수 인재를 영입하는 것이 필수라는 입장이다.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 제리 브라운의 신흥 기술 및 이민 담당 차관보를 지낸 제프 레는 트럼프 대통령이 H-1B 프로그램을 축소하지는 않고 불법 이민 단속에만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멕시코 국경에서의 이민자 유입을 차단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지지층과 의회 내 초강경 보수 공화당 의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H-1B 프로그램은 논란의 중심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의견이다.
현재 시큐리티스코어카드(SecurityScorecard)의 글로벌 정부 관계 및 공공 정책 부사장인 레는 이 프로그램이 의회에서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으며, 공화당과 트럼프의 오랜 동맹인 IT 리더들의 지지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트럼프 지지자인 IT 벤처 자본가 피터 틸과 IT 투자자 마크 안드레센이 이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언급했다.
레는 “하이테크 기업과 트럼프의 벤처캐피털 후원자 및 지지자들은 첨단 기술 비자 프로그램 확대에 집중해 왔다. 매그니피센트 7(Magnificent 7)뿐만 아니라 벤처캐피털이 지원하는 AI 기업이 특히 미국 최상위 연구대학 프로그램 출신의 AI 데이터 과학자와 같은 직책을 채우기 위해 H-1B 비자를 활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AI 리더십 유지
레는 트럼프 행정부가 H-1B 관련 사기를 단속할 수는 있지만, 미국이 전 세계 AI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상황에서 다른 변화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AI 경쟁에서는 인적 파이프라인이 매우 중요하다. 딥시크가 구형 칩과 훨씬 적은 비용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인재는 매우 중요한 자원이다”라고 평가했다.
텍사스의 로자노 법률사무소 소속 이민 변호사 알프레도 로자노도 여러 IT 대기업이 트럼프와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비자 프로그램을 변경할 가능성은 낮다고 언급했다. 소위 안보상의 이유로 일부 국적을 제한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2025년 말이나 2026년 초까지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로자노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기술 산업이 핵심 권력층에 들어왔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축소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는 내버려 둘 수도 있다. 정치적 지지 기반을 감안하면 H-1B 문제는 중요 사안으로 다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대신 지지층을 만족시키기 위해 추방에 집중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로자노는 레와 마찬가지로 H-1B 프로그램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면서, “MAGA 지지자들은 미국 기술 산업 경제가 H-1B 비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 비자는 전 세계의 뛰어난 전문가들을 데려오기 위해 활용되고 있다. 이들이 일단 미국에 정착하면 그 영향력이 미국 경제 전반으로 확산된다”라고 말했다.
머스크 대 MAGA
H-1B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은 지난해 12월 말 머스크가 프로그램 확대를 요청하면서 본격화됐다. 이 프로그램은 매년 6만 5,000명의 외국인 노동자의 미국 입국을 허용하며, 미국 대학에서 고급 학위를 받은 외국인 학생을 위한 추가 2만 개의 비자를 제공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의 관심도 뜨겁다. 최근 몇 년간 미국 이민국에 신청된 H-1B 비자는 매년 수십만 건에 달했다. 2025년 승인 과정에는 48만 명이, 2024년에는 78만 1,000 명이 비자를 신청했다. 아마존, IBM,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와 같은 IT 대기업에서 H-1B 비자를 더 많이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6년 트럼프는 이 비자가 미국 노동자에게 “매우 나쁘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또한 2020년 6월 대통령 재임 중에는 고숙련 외국인 노동자의 미국 입국 금지 조치를 60일 연장했을 만큼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말에는 입장을 바꿔 “항상 이 비자를 좋아했다”라고 밝히면서, 자신의 사업에서도 이를 활용한다고 언급했다.
테슬라에서 H-1B 소지자를 고용해 미국 직원을 대체했다는 의혹을 받는 머스크는 12월 27일 트위터를 통해 이 프로그램이 자신의 미국 이주를 가능하게 했으며, 테슬라와 스페이스X와 같은 기업에 매우 중요한 제도라고 언급했다. 머스크는 “이 문제에 대해서라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MAGA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스티브 배넌은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머스크를 겨냥해 “H-1B 비자 확대를 계속 추진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라고 반발했다. 나아가 그는 H-1B 프로그램의 전면 폐지와 현재 비자 소지자 전원의 추방을 주장했다.
즉각적인 반발이 일자 머스크는 한발 물러나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면서, 최저 급여 인상 등의 개혁안을 제시하는 등 입장을 조정했다.
뉴욕의 베라르디 이민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인 로잔나 베라르디는 격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H-1B 프로그램의 변화는 세부적인 행정 절차 조정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베라르디는 비자 갱신 간소화, 유학생의 비자 쿼터 면제, 더욱 엄격한 심사 기준 등이 도입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베라르디는 기술 대기업들이 이미 조용히 규제 강화에 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IT 기업 경영진은 앞으로 비자 발급이 더욱 까다로워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그는 프로그램 규제가 미국 경제 전반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인의 기술 분야 취업 기회와 임금이 증가할 수 있지만, 기업들이 전문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혁신이 둔화될 수 있다. 일부 기업은 이미 사내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거나 해외 개발센터를 설립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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