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발표한 AI 칩 수출 규제의 여파가 유럽연합(EU)에도 미치고 있다. 해당 규제가 AI 업계를 뒤흔든 이후, EU도 이에 반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현재 EU 회원국 27곳 중 수출 제한을 받지 않는 곳은 10개국에 불과하다. 미국 AI 칩의 수출 제한을 받지 않는 EU 회원국에는 벨기에,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스웨덴이 있다. 유럽 외에는 호주, 캐나다, 일본, 대만, 한국, 뉴질랜드, 노르웨이, 영국으로의 수출이 허용된다.
반면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그리스, 폴란드 등 주요 EU 회원국은 수출 제한 국가에 속한다. 이들 국가가 제외된 이유는 명확하지 않으나, 일부 지도자의 친러시아 성향이나 비동맹국과의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한 수출 중개 가능성 때문일 것으로 추측됐다.
회색 지대
논란이 된 바이든 행정부의 AI 규제는 일명 ‘인공지능 확산을 위한 수출 통제 프레임워크’로, 곧 정식 발표를 앞두고 있다. 이는 미국의 최첨단 칩과 이를 활용하는 AI 모델의 수출을 통제한다는 내용이다.
이미 수출 통제를 받고 있는 중국과 적대 국가가 주요 대상이며 미국의 우방국은 제외된다. 그러나 많은 국가가 양 극단 사이의 회색 지대에 놓였다.
바이든 행정부가 잠정최종규칙(IFR)으로 발표했기 때문에 즉시 적용 가능하지만, IFR이 피드백을 통해 수정될 수 있는 만큼 EU가 신중히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EU의 기술주권·안보·민주주의 담당 부집행위원장 헨나 비르쿠넨과 무역·경제안보 담당 위원 마로시 세프코비치는 공동성명을 통해 “EU가 미국으로부터 제한 없이 첨단 AI 칩을 구매하는 것이 미국의 경제적, 안보적 이익에도 부합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현 미국 행정부에 우려 사항을 이미 전달했으며, 차기 미국 행정부와도 건설적인 논의를 이어나가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수출규제 내용
이번 프레임워크는 3단계 허가 체계로 구성된다. EU 10개국 등 우방국은 최첨단 AI 칩을 포함해 제한 없이 구매할 수 있다. 다른 대부분의 국가는 컴퓨팅 파워에 대한 수출 제한이 있는 중간 단계에 속한다.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국가는 이미 미국의 AI 칩의 구매가 금지된다.
중간 단계 국가의 경우 ‘약 1,700개의 첨단 GPU에 해당하는 총 연산 능력’을 초과하지 않는다면 수출 허가가 필요하지 않다. 이는 대학이나 의료 기관이 사용하는 수준의 GPU 파워이며, 이런 판매는 국가별 칩 할당량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대규모 언어 모델(LLM)의 경우 우방국 외에는 가장 강력한 전용 모델의 판매가 제한된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제한 대상 모델을 10^26회 이상의 연산을 사용하는 비공개 가중치 모델로 정의했다.
중간 제한 단계에 속한 국가들은 기존의 보편적 검증 최종사용자(VEU) 인증 프로그램을 통해 엄격한 요구사항을 충족하면 규제를 통과할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가령 데이터센터는 최고 수준의 페드램프(FedRAMP HIGH) 표준을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통해 일반적으로 가능한 수준 이상의 대규모 클러스터를 구축할 수 있다.
백악관은 “이 자격을 얻은 기업은 자사가 보유한 전체 AI 연산 능력의 최대 7%를 전 세계 국가에 배치할 수 있으며, 이는 수십만 개의 칩에 해당하는 규모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진 반발
보통 미국 행정부의 임기 말은 조용한 시기로 알려져 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임기 종료를 며칠 앞둔 상황에서 그간의 관행을 깨고 4년 임기 중 가장 논란이 된 기술 규제를 발표했다.
‘인공지능 확산을 위한 수출 통제 프레임워크’는 미국 기술 업계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이보다 많은 비판을 불러일으킨 기술 규제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퇴임을 앞둔 행정부 비판에는 위험 부담이 적다는 인식이 한몫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새 프레임워크의 세부 사항이 미국 기술 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 진지하게 우려하는 입장도 있다.
주요 비판은 해당 규제가 미국 기업이 외국 고객에게 첨단 AI 시스템을 판매하거나 운영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첨단 클라우드 서비스를 판매하는 플랫폼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 규제가 미국의 시장 점유율을 제한하는 동시에 중국 독점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한 미국 AI 기술의 중요한 시장일 뿐 아니라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동맹국인 이스라엘과 싱가포르가 수출 허용국에서 제외되는 등 예상 밖의 문제도 잇따랐다.
공화당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는 소셜미디어 플랫폼 X에 이 프레임워크에 대한 초당적 반대 의견을 게재했다. 그는 “의회나 미국 기업의 의견 수렴 없이 비밀리에 작성된 과도한 칩 수출 제한은 AI 정책에 대한 잘못된 접근 방식을 보여주며 혁신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프레임워크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엔비디아도 비판 입장을 밝혔다. 엔비디아의 정부 담당 부사장 네드 핀클은 “바이든 행정부가 임기 말에 적절한 입법 검토 없이 작성한 200페이지 이상의 규제로 미국의 리더십을 악화시키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규제 유지 가능성은?
일각에서는 차기 트럼프 행정부가 수출 규제 계획의 대부분을 폐기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계획 수정이 확실하더라도 새 행정부는 누가 미국의 AI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와 같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 역시 AI 칩이 중국, 이란, 북한의 손에 들어가기를 피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또한 복잡성과 허점을 만들 수 있는 많은 예외 조항이 혼재돼 있다는 점도 이 프레임워크의 문제로 꼽힌다. 다만 미래의 모든 행정부는 같은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미국 기업에 형식적인 서류 작업만 늘리는 관료주의적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적대 국가의 AI 개발을 어떻게 늦출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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