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P가 지난달 미국 플로리다에서 개최한 연례 컨퍼런스 ‘사파이어(Sapphire)’에서는 통합 비즈니스 제품군(Business Suite)과 생성형 AI 에이전트 ‘줄(Joule)’에 대한 내용이 강조됐다. 하지만 주력 ERP 솔루션인 S/4HANA로의 고객사 전환 현황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SAP 경영진은 기존 ERP 시스템인 ECC에서 S/4HANA로의 전환을 얼마나 이끌었는지에 대한 진척 상황을 공개하지 않았다. 많은 고객에게 ECC의 기술지원 종료 시점이 2027년 말로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가트너(Gartner)의 기술 및 서비스 공급자 부문 부사장 파비오 디 카푸아는 “SAP 경영진이 전환 현황에 대해 언급을 피한 것은 놀랍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는 “회의적인 분석가로서 벤더가 수치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결과가 좋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결과가 좋았다면 ‘우리가 해냈다’라며 먼저 소리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치로 보는 S/4HANA 도입 현황
가트너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SAP ECC 고객사 약 3만 5,000곳 중 39%(약 1만 4,000곳)만 S/4HANA로 전환을 마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27년까지 1만 7,000곳, 즉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고객사가 여전히 ECC를 사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가트너는 2030년까지도 ECC를 사용하는 기업이 1만 3,000곳 이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IDC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부문 부사장 미키 노스 리자는 이보다 낙관적으로 전망했지만 차이는 크지 않았다. 그는 2027년까지 ECC 고객의 40~45%가 여전히 해당 솔루션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SAP는 2015년 말 S/4HANA를 처음 출시했으며, 2021년 1월에는 ‘라이즈(RISE)’ 전환 프로그램도 선보였다. 하지만 디 카푸아는 기업의 전환 속도가 꾸준하되 느리다고 지적했다. 또한 SAP는 2023년 3월에 중기업 대상의 ‘그로우(GROW)’ 프로그램도 출시한 바 있다.
디 카푸아는 “SAP가 고객을 라이즈로 전환시키려 할 때, 우리는 ‘수년간 절반도 설득하지 못했는데, 나머지를 5년 안에 어떻게 전환시킬 계획인가’라고 물었다”라고 언급했다.
그는 ECC 시스템의 복잡성, 특히 맞춤형으로 설계된 시스템 규모와 마이그레이션 비용을 2가지 주요 걸림돌로 지적했다. 일부 프로젝트는 200만 달러 수준에서 진행되지만, 대기업의 복잡한 시스템은 최대 10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디 카푸아는 가트너가 고객사와 3~7년에 걸친 전환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며, 단순한 시스템 이전이 아닌 전면적인 업무 프로세스 재설계와 변화 관리 체계 수립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일부 기업은 추가적으로 인사(HCM)나 조달 솔루션까지 도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덧붙였다.
서드파티 지원 업체
많은 SAP 고객사가 ECC에 대해 외부 벤더의 기술 지원을 검토하거나, SAP가 지원 종료 시점을 또다시 연장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SAP는 과거에도 일정을 여러 차례 늦춘 전례가 있다. SAP는 지난 2월 새로운 전환 옵션인 ‘SAP ERP 프라이빗 에디션 전환 옵션(SAP ERP, private edition, transition option)’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일부 대형 고객사를 대상으로 ECC 사용을 2033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일부 SAP 고객사들은 ERP의 특정 기능을 외부 벤더를 통해 보완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디 카푸아는 특히 인사, 조달, 공급망 관리 기능에 대해 서드파티 솔루션을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IDC의 노스 리자는 고객들의 어려움을 인식한 SAP가 지원 종료 시점을 연장하고 새로운 전환 도구를 도입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SAP는 고객사가 어디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기존 제품군에서 새로운 제품군으로 전체 조직을 한꺼번에 마이그레이션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그중 하나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SAP는 고객이 전환 과정을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경로를 만들려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SAP “수요 높고 클라우드 전환도 순조롭다”
SAP는 자사 제품과 클라우드 서비스, 특히 S/4HANA의 클라우드 버전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SAP 아메리카 및 글로벌 비즈니스 제품군 사장 겸 최고수익책임자(CRO) 얀 길크는 2025년 1분기 SAP의 클라우드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약 26%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버스타인리서치(Bernstein Research)의 전무 겸 수석 애널리스트 마크 모어들러는 신규 클라우드 고객의 3분의 2가 완전히 새로운 고객이라는 점이 SAP에 긍정적인 신호라고 분석했다.
한편 길크는 SAP 고객이 ERP 기능을 외부 벤더의 솔루션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디 카푸아의 지적에 반박했다. 그는 “오히려 생성형 AI 시대에는 독립적인 업무별 애플리케이션이 점점 의미를 잃고 있다. 클라우드 덕분에 데이터 접근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고, 통합된 클라우드 솔루션 제품군에 대한 고객 수요가 커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IBM을 포함한 여러 기업은 S/4HANA로의 전환이 가져온 실질적인 효과를 언급했다. IBM의 경우 지난해 7월 SAP 클라우드 ERP 플랫폼으로 전환한 후 인프라 관련 운영 비용이 30% 감소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널리스트들은 SAP가 남은 ECC 고객을 설득하는 과정이 험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포레스터(Forrester)의 엔터프라이즈 앱 및 서비스 부문 수석 애널리스트 악샤라 나이크 로페즈는 SAP가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로 유도하는 과정에서 일부 ECC 고객이 이미 하이퍼스케일러와 체결한 계약을 이유로 전환을 주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를 AWS나 애저(Azure) 같은 플랫폼으로 이전해 속도를 높이고 있다”라며 “대규모 클라우드 계약을 체결한 상태인 만큼, 고객들은 그 계약을 활용해 S/4HANA를 하이퍼스케일러 위에서 호스팅하길 원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나이크 로페즈는 고객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SAP가 지난해 2분기부터 대규모 할인 정책을 도입했다며, 이런 정책에 불구하고 2027년 이후에 전체 ECC 고객의 40% 이상이 기존 ERP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정기적인 버전 업데이트와 기타 수정 사항을 꾸준히 적용해 온 경우, 전환 압박을 거의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그는 진단했다.
그는 “이들 기업에 물어보면 ‘우리의 ECC 환경은 매우 견고하고 안정적이다’라고 답할 것”이라며 “SAP의 기술 지원이 종료된다고 해서 시스템이 갑자기 멈추거나, 과거에 없던 문제가 새롭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환경은 예전과 똑같이 작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dl-ciokorea@foundry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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