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는 2일, 인공지능 칩 H20의 보안 취약점 의혹과 관련해 규제 당국이 엔비디아 관계자를 소환한 지 하루 만에, 관영 인민일보를 통해 ‘엔비디아, 당신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라는 제목의 강경한 논평을 게재하며 압박 수위를 끌어올렸다.
이 논평은 위챗과 시나웨이보에 동시에 게재됐으며, 수 주 전 트럼프 행정부가 H20 칩에 대한 수출 금지를 철회한 이후 중국 정부가 해당 반도체 기업에 대해 제기한 가장 직접적인 공개 경고로 평가된다. 엔비디아가 백도어 존재를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관영 매체는 “중국 사용자의 우려를 해소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소환에 따라 설득력 있는 보안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번 사안은 1일 중국 인터넷정보판공실(CAC)이 H20 칩에 잠재적 위치 추적 및 원격 종료 기능이 포함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심각한 보안 문제’를 제기하며 엔비디아 측을 소환하면서 시작됐다. CAC는 이와 관련된 해명과 증빙 문서 제출을 요구했다.
엔비디아 대변인은 이에 대해 “사이버 보안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며 “엔비디아 칩에는 누군가가 원격으로 접근하거나 제어할 수 있도록 하는 백도어는 없다”라고 밝혔다.
중국, 칩 보안 취약점으로 인한 디스토피아적 상황 경고
인민일보는 논평에서 칩 보안 취약점이 악용될 경우를 가정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여기에는고속도로를 달리던 신에너지 차량이 갑자기 멈추고, 원격 수술 중이던 환자의 화면이 꺼지며,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모바일 결제가 갑자기 실패하는 상황 등이 포함된다. 이어 “컴퓨팅 칩에 존재하는 취약점이나 백도어의 보안 리스크가 한 번 촉발되면, 언제든 ‘악몽’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중국의 이번 보안 조사는 최근 미국 의회에서 논의 중인 고성능 AI 칩에 대한 위치 추적 기능 의무화 입법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2025년 5월 8일, 공화당 상원의원 톰 코튼은 “공산주의 중국 같은 적국의 손에 미국의 첨단 칩이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칩 보안법(Chip Security Act)’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수출 통제 대상인 첨단 칩에 대해 법안 시행 후 6개월 이내 위치 인증 기능을 탑재하도록 하고, 제품이 전용되거나 변조될 경우 미국 산업안보국(BIS)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CAC는 성명을 통해 “미국 의원들이 첨단 칩에 추적 기능을 추가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미국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엔비디아 칩 관련 원격 제어 기술이 이미 성숙 단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고 밝혔다.
중국 “엔비디아 해명, 신뢰 회복엔 부족”
인민일보는 엔비디아가 앞서 “사이버 보안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엔비디아 칩에는 외부가 원격으로 접근하거나 제어할 수 있는 백도어는 없다”고 밝힌 입장을 인용했다. 그러나 인민일보는 이 같은 해명을 불충분하다고 일축하며, “신뢰를 회복하려면 설득력 있는 보안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강조했다.
엔비디아는 미국의 보안 요구와 중국 시장의 신뢰 회복이라는 두 가지 압력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미 상무부 하워드 루트닉 장관은 H20 칩에 대해 “엔비디아의 네 번째 수준의 프로세서”라고 설명하며 “우리는 그들에게 최고의 제품도, 두 번째, 세 번째 제품도 판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H20 칩은 미국 수출 규제를 고려해 성능을 일부 낮춘 중국 전용 제품군의 일환이다. 하퍼(Hopper)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하되, 일부 사양이 제한돼 있다. 중국 고객이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의 연산 능력은 유지하면서 미국 규제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설계다.
엔터프라이즈 IT, 칩 조달 난관에 직면
이번 충돌은 엔터프라이즈 AI 도입에 핵심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긴장을 부각시킨다. 인민일보는 “사이버 보안은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기업의 생명줄이며 국가 안보와도 직결돼 있다”고 언급했다.
글로벌 IT 리더 입장에서는 이번 갈등이 전 세계 AI 칩 조달 환경의 복잡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러 지역에 걸쳐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미국의 추적 요건과 중국의 보안 우려가 교차하는 상황 속에서 반도체 소싱 전략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업계는 미국의 수출 통제 요건과 중국의 보안 기준이라는 상반된 요구를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는 향후 글로벌 AI 하드웨어 시장의 향방을 결정지을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무역 전쟁으로 반도체 분야서 1,300억 달러 손실 발생
이번 논란은 미·중 기술 경쟁 심화라는 더 큰 틀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10월, 중국의 첨단 반도체 접근을 제한하는 대규모 수출 통제를 시행했으며, 2023년 10월과 2024년 12월에도 관련 규제를 더욱 강화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2022년 10월 수출 규제 발표 직후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약 1,300억 달러(약 180조 원)의 시가총액 손실을 입었다. 이에 대응해 중국은 2024년 5월, 475억 달러(약 65조 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 기금을 조성했다. 이는 지난 10년간 세 번째 조성된 펀드다.
2025년 8월 기준, 트럼프 행정부 2기 체제 하에서 미국은 중국산 모든 수입품에 평균 54.9%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도 미국산 수입품에 평균 32.6%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한편,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는 2025년 1월, 오픈AI 수준에 필적하는 고성능 AI 모델을 출시하며 규제 속에서도 기술 혁신을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엔비디아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별도의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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