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마스터(Web Master)’라는 직업이 있었다. 웹의 모든 영역을 관장하는 이. 그런 사람을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웹마스터라고 불렀다. 지금의 시대에선 그 모든 일이 세분화돼 각각의 담당자가 존재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랬다. 기획, 디자인, UX, 프론트엔드, 백엔드, 보안, SEO, 트래픽 등 웹사이트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웹마스터라는 한 사람이 도맡아야 했다. 물론 웹사이트의 기능이나 규모가 지금보다 제한적이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오창훈 토스증권 CTO도 웹마스터였다. 그런데 그가 정복하려고 했던 것은 웹 하나가 아니었나 보다. 20년이 넘는 그의 경력은 하나로 좁혀지지 않는다. 이러닝 서비스 개발, 쇼핑 개인화 페이지 개발, 스트리밍 인프라 구축, 게임 플랫폼 기획 등 온갖 분야의 기술을 마스터하려던 흔적이 보인다. “내가 무엇인가 할 것이 많은 곳, 나를 인정해주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라고 말하는 그가 현재 정착한 곳은 토스다. 처음 3년은 토스에서, 그리고 최근 4년간은 토스증권에서 일하며 다양한 기술적 성과를 이뤄냈다. 마치 무림의 고수(Master)가 새로운 문파를 여는 것처럼, 그는 동료들과 증권업계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다.
신축 VS 리모델링의 차이
토스증권의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는 작년 12월 기준 384만이다. MAU 기준 증권 업계 1위다. 작년 11월 기준 토스증권이 한 달에 처리하는 해외 주식 거래 대금은 약 30조 원.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하지만 규모 면에서 토스증권은 업계 선두권에 진입했다. 여기에 당기순이익 기준 2년 연속 흑자를 달성했으며, 작년 순이익은 약 1,315억 원이다.출범 3년 만에 이룬 놀라운 성과의 배경에는 쉽고 빠른 서비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서비스를 뒷받침한 것은 바로 탄탄한 기술 투자였다.
초창기야 그렇다 치고, 핀테크 시장이 어느 정도 성숙된 지금 시점에서도 기존 증권사의 기술 발전 속도가 토스증권에 비해 더디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통 이런 질문엔 “기술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다”라든지 “의사결정이 빠르다” 같은 답변이 나오기 마련인데, 오창훈 CTO의 첫 대답은 의외로 “우리는 운이 좋았다”였다. 인터뷰 내내 타 증권사를 ‘선배’ 증권사라고 칭하던 오창훈 CTO는 “선배 증권사들도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으나, 환경적 제약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라고 크게 다르게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기존 증권사 시스템은 복잡하게 얽힌 의존성으로 인해 새 기술 적용이 더딜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토스증권은 선배 증권사의 고충을 미리 파악하고, 완전히 새로운 구조 위에 기술을 설계했다. 기술적 혜택을 누리기 적합한 시기에 회사가 설립된 부분이 큰 행운이었다”라고 밝혔다.
기존 증권사와 토스증권의 차이는 ‘모놀리식 아키텍처(Monolithic Architecture) 기반의 메인프레임 환경’과 ‘MSA(Microservices Architecture) 기반의 클라우드 네이티브 환경’에서 비롯된다. 비유하자면 전자가 20년 된 아파트, 후자가 신축 아파트다. 가령 오래된 아파트는 기본 뼈대를 유지한 채 필요에 따라 리모델링을 진행한다. 주기적인 개선을 시도하지만, 기본 구조가 현대적 공법에 맞지 않아 새로운 시설 도입이 제한적이다. 마치 지하주차장을 만들고 싶어도 처음부터 그 공간이 없어 야외주차장만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20년 전 건축 공법으로 지어진 구조는 각 설비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401호의 난방 공사가 4층 전체 난방 시스템에 영향을 주듯 한 곳의 수정이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 기술 환경에 대입해 보면, 모놀리식 아키텍처 기반의 메인프레임 환경은 고성능의 안정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이상적이었으나, 시스템 수정에는 큰 제약이 따랐다. 변수나 테이블명 변경과 같은 작은 코드 수정도 어려웠다. 시스템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사소한 수정이라도 미리 다른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철저히 검증해야 했기 때문이다. 금융 거래에서는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기존 증권사는 ‘차세대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특정 주기마다 시스템을 일괄 검증하고 교체하는 방식을 택했다.
토스증권도 초기에는 모놀리식 아키텍처를 도입했으나, 시스템 간 의존성을 줄이기 위해 MSA 기반 클라우드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으로의 전환을 추진했다. 토스증권은 너무 많은 서비스를 한꺼번에 내놓기보다는 핵심 서비스에 역량을 집중해 제품 개선 속도를 높이고 사용자를 유인하는 전략을 택했는데, 이를 뒷받침하기에는 MSA 기반의 클라우드 네이티브 환경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MSA 기반 클라우드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 구조에서는 개발자가 전체 시스템을 완벽히 꿰뚫지 않아도, 특정 영역의 기능만 숙지하면 신속한 수정과 배포가 가능하다. 토스증권은 이체, 출납, 계좌, 매매, 권리 등의 서비스를 독립적으로 운영하여, 마치 한 가구의 난방 공사가 이웃 가구에 영향을 주지 않듯이 각 서비스의 변경이 다른 서비스에 영향을 주지 않는 구조를 구축했다. ‘차세대 프로젝트’라는 별도의 대규모 프로젝트 없이도 필요할 때마다 즉시 기술을 개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클라우드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 기반이라 해서 모든 애플리케이션이 클라우드에 올라간다는 뜻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온프레미스, 클라우드, 운영체제 등 외부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즉시 실행 가능한 컨테이너 기반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의미다. 토스증권의 경우, 현재는 금융 규제상 망분리 요건에 따라 일부 적합한 서비스만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고, 나머지는 IDC에서 운영하고 있다. 오창훈 CTO에 따르면, 증권사 중 MSA 기반 클라우드 네이티브 증권 시스템을 구축한 사례는 토스증권이 최초이다.
같은 위기, 다른 대응··· 사람과 문화가 결정짓는 기술 속도
그렇다면 기업이 MSA 기반 클라우드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을 도입하면 토스처럼 서비스를 빠르게 만들 수 있을까? 오창훈 CTO는 “꼭 그렇지는 않다”라고 선을 그었다. 특정 기술 구조의 도입이 성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MSA나 클라우드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속 가능한 기술 혁신을 위해서는 인력, 문화, 전략의 변화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오창훈 CTO는 “MSA 기반 클라우드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애자일한 기능 개발 체계 그리고 수천 대의 서버를 관리하기 위한 자동화·모니터링 기술을 더 고민했다”라며 “분산 환경에서 시스템 설계와 데이터 무결성을 보장하기 위한 전략도 새로 짜야 했다”라고 밝혔다.
오창훈 CTO는 이런 구조 덕에 가시성이 매우 높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대규모의 실시간 데이터를 처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토스증권은 현재 일 1,000억 건(20테라바이트)의 서비스 로그를 실시간 분산 처리하고 있으며, 월 3~4페타바이트 규모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각 서비스에 맞춤형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토스증권은 기술 혁신에 걸맞은 빠른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었다. 전 직원 400여 명 중 45%(180여 명)가 IT 인력인 이곳은 수평적 문화와 토론 기반의 의사결정을 원칙으로 삼는다고 오창훈 CTO는 설명했다. 그는 “토스증권에선 기술 변경을 위해 상부 결재를 기다리기보다는 8~9명 정도의 소규모 단위 애자일 조직이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고, 개발자, PO, 디자이너가 긴밀하게 협업하여 빠르게 제품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라며 “물론 각 팀 리더가 CTO에게 보고를 하긴 하지만, 그 보고는 현 상황을 공유하는 성격을 띤다”라고 설명했다.
장애 대응은 오창훈 CTO가 특별히 신경쓰는 분야다. 증권사에서 발생하는 시스템 장애는 고객에게 금전적 보상을 지급하거나 당국의 징계까지 받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기술력을 앞세운 토스증권조차 출범 이후 여러 차례 장애를 겪었는데, 이후 회사는 신속한 해결과 재발 방지를 위해 특히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오창훈 CTO는 “장애가 났을 때 개인의 실수를 탓하기보다는 시스템적으로 실패를 방지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에 더 집중하려 했다. 이런 부분이 CTO의 핵심 업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오창훈 CTO가 제시한 해법 중 하나는 ‘장애 부검’이다. 토스증권에서 장애가 발생하면 원인 규명보다 해결에 우선순위를 두고, 개인의 과실보다는 해결책과 예방에 집중한다. 관련 직원은 실패의 원인, 영향, 현재 상황을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공유하며, 신속한 복구 작업을 진행한다. 시스템이 정상화된 후에는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고 즉시 적용하는 한편, ‘장애 부검’이라는 심층 리뷰를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도출된 교훈과 대응 전략은 전체 엔지니어와 공유되어 조직의 역량으로 축적된다. 나아가 사후 대처를 넘어 위험 요소를 선제적으로 감지하고 장애를 예방하기 위한 프로세스 개선에도 힘을 쏟고 있다.

Toss Securities CTO, Changhun Oh / Toss Securities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려운 ‘수평 문화’의 기술
토스증권의 IT를 이끄는 자리에 오기까지, 오창훈 CTO에게는 진지한 고민의 과정이 필요했다. 토스증권 법인이 구상되고 있던 2021년, 모회사 비바리퍼블리카는 그에게 토스증권의 CTO 자리를 맡기려 했다. 하지만 그는 두 번을 고사했고, 세 번째 제안에서 CTO 자리를 수락했다. 그는 이전에 팀 단위의 리더직을 맡고 있었지만, 그에게 CTO라는 직책은 낯설기만 했다. 이전에 접했던 CTO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존재였고, CTO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명확한 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개발 업무 자체를 ‘지독하게’ 좋아했기에 그는 IC(Individual Contributor, 조직에서 리더나 관리직을 맡지 않고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업무 수행 및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개인 기여자)로서 실무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베이직, 코볼, 포트란과 만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하루 종일 이 일만 하고 싶다’라며 꿈을 키웠고, 프로그래머를 늘 천직으로 여겼던 그였다. 회원가입을 할 때면 아이디에 ‘LoveDev’라는 단어를 넣을 정도로, 개발에 대한 열정이 컸다. 그럼에도 CTO직을 수락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성장하는 팀에서 얻은 경험을 다른 개발자와 공유하고 싶다는 바람, 그리고 토스의 CTO가 기존 CTO와는 다른 역할을 한다는 점이었다.
직원 수가 50여 명이었던 토스의 초창기부터 함께해 온 오창훈 CTO는 회사의 변화를 곁에서 지켜봤다. 그동안 단순 송금 서비스였던 토스는 은행, 결제, 증권을 아우르는 종합 금융사로 성장했다. 바로 이 ‘성장의 기쁨’을 새로 출범하는 토스증권에서도 재현하고 싶었다는 것이 오창훈 CTO의 설명이다. 그는 “토스증권은 당기순이익 기준으로 전년 대비 약 100배 성장했다”라며 “지금도 CTO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술 조직의 모든 구성원이 최고의 성장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CTO 업무의 일도 다르게 정의했다. 일반적으로 CTO, CIO 같은 기술 총괄 임원은 취임 후 거시적인 기술 목표를 수립하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같은 전사적 과제를 제시한다. 이후 실무진이 세부 방안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하향식 의사결정을 따른다.
반면 오창훈 CTO는 매주 팀원들이 제안한 아이디어와 기술 개발 현황을 세밀하게 검토하고, 각 팀의 방향성을 함께 조율하는 상향식 리더십으로 조직을 이끈다. 이러한 리더십이 가능한 것은 CTO를 포함한 모든 기술 리더가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실무 경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창훈 CTO에 따르면, 토스증권의 기술 조직에선 리더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을 팀원에게 지시하는 일이 거의 없다. 기술적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피드백을 제시하면 팀원으로부터 “해당 기술을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그런 피드백이 적절한가요?”라는 질문이 돌아올 확률이 높다. 사실상 토스증권 내 기술 리더는 담당 기술 대부분을 마스터해야 한다는 의미다. C레벨 임원도 예외는 없다.
오창훈 CTO는 “토스증권 내 기술 리더는 실무 영역에서 모범 사례를 만들어낸 경험이 있고, 자신의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팀의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라며 “실무에서 쌓은 엔지니어링 감각으로 협업하기 때문에, 팀원과 기술적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제안과 소통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이러한 역량을 미리 보여준 사람이 자연스럽게 리더 자리에 오르고, 팀원은 우리 리더가 지금 이야기하는 기술을 잘 알고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라며 “이러한 신뢰는 수평적 문화를 지향하는 조직에서 매우 중요하다. 기술을 잘 모를 것 같은 사람, 그리고 신뢰받지 못하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것 자체가 팀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평가 방식은 어떨까? 토스증권은 개발자 평가에서 코드 작성량이나 기술적 지표가 아닌, 전체 목표 달성 기여도를 중시한다. 6개월마다 회사 전체의 핵심 목표(Company Focus)를 설정하고, 각 팀은 이에 맞춰 세부 목표(OKR)를 수립한다. 팀 목표가 정해지면 개인별 기여 목표도 자연스럽게 설정된다. 모든 구성원이 전체 목표 달성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며, 목표 달성 과정은 지표로 관리된다. 이 지표를 기준으로 팀의 목표 달성도를 평가하며, 모든 구성원의 기여도를 동등하게 인정한다. 팀이 목표를 달성하면 모든 구성원에게 동일한 비율의 인센티브가 지급된다.
직접 개발하는 범위는 예전보다 좁아졌지만, 오창훈 CTO는 여전히 기술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AI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데, 이는 올해 핵심 과제인 보안, 자동화, 개인화가 AI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해외 진출을 위한 기술적 기반도 준비하고 있다.
삼고초려 끝에 맡게 된 CTO 자리. 3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CTO 직에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어려운 질문이다”라고 운을 떼며 “어떤 상황에서도 견디고, 끈기 있게 이끌어가는 능력이 필요한데, 그만큼 기술 리더에겐 의외로 체력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email protected]
Read More from This Article: 인터뷰 | 금융의 속도를 바꾼 기술자··· 토스증권 오창훈 CTO의 리더십 코드
Source: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