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아닌 AI 의사가 진료하는 시대가 올 수 있을까? AI 시대에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일 터다. 미래에 많은 업무가 AI로 대체될 것이라고 예상되는 가운데, AI에 대한 투자가 어느 산업보다 활발한 곳이 의료 분야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곳에서 AI를 쉽게 도입할 수 있겠냐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AI 의료를 바라는 목소리도 많다. 지난 2021년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발표한 ‘인공지능 대중화를 위한 대국민 인공지능 이용 인식조사’에 따르면 병원·의료·헬스케어 분야는 응답자 62.1%가 AI 대중화가 먼저 이뤄져야 할 분야로 꼽았다. 이제 의료 분야는 이미지 분석 및 진단부터 신약 개발, 환자 관리 등 AI를 활용한 사용 사례를 다양하게 구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의료 AI에 앞선 조직은 어디일까? 국내 주요 병원이 AI 의료체계를 속속 도입하는 상황에서, AI 관련 연구부터 기술 개발, 심지어 교육까지 담당하고 있는 ‘일당백’ 조직이 있다. 지난 2020년 문을 연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인공지능센터다. 분당서울대병원 김세중 의료인공지능센터장(신장내과 교수)은 현재까지 AI와 관련한 성과를 공유하며, 의료 분야의 미래를 바꿀 기술에 대한 의견을 전했다.
앞선 의료인공지능 연구의 배경은 ‘페이퍼리스 호스피탈’
머신러닝, 딥러닝 등의 AI 기술을 충분히 활용하려면 어떤 준비물이 필요할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AI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데는 양질의 데이터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이 한발 앞서 의료인공지능 연구에 나설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원 당시부터 ‘페이퍼리스 호스피탈’로 출발해 의료 데이터를 모두 전산화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분당서울대병원 김세중 의료인공지능센터장 / Foundry
분당서울대병원이 개원한 2003년은 병원 정보화 시대가 열리며 의료영상전달시스템(PACS), 처방전달시스템(OCS), 전자의무기록(EMR) 등이 주목받던 시기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검사부터 수납까지 업무 관련 문서 대부분이 수기로 작성됐지만, 병원 정보화의 흐름 속에서 문을 연 분당서울대병원은 ‘첨단 디지털 병원’이라는 목표 아래 병원 업무 전체가 디지털 운영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따라서 다른 병원처럼 기존의 업무 방식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데 따른 어려움이 없었으며, PACS, OCS, EMR 등 디지털 의료 서비스로 환자의 대기 시간을 단축하고 의사 및 간호사의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또한 2011년 분당서울대병원은 원무 서비스에 ‘페이퍼리스’를 실현해 환자가 모니터 화면으로 의무 기록, 영상 자료 사본 등을 발급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셀프계산대와 무인발급기가 보편화된 지금이야 일반적인 기술로 인식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시스템을 갖춘 곳은 많지 않았다. 당시 분당서울대병원은 높은 전산화 수준을 인정받아 의료기관의 EMR 수준을 보여주는 ‘의료정보 7단계 레벨 인증’을 국내 병원 중 처음으로 획득했다.
김세중 센터장은 분당서울대병원이 디지털 의료 기관으로서의 성과를 인정받은 시기인 2011년에 신장내과 조교수로 부임했다. 김세중 센터장에 따르면 당시 그는 국제신장학회 가이드라인이 막 출간된 급성 신손상(신장 손상) 연구에 주력했는데, 이 치료의 핵심은 최대한 빨리 예측하고 진단하는 데 있었다. 치료를 개선하는 조기 진단 알림 시스템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살을 붙이며 자연스럽게 머신러닝, 딥러닝, 그리고 인공지능을 접하게 됐다.
김세중 센터장은 “부임 때부터 분당서울대병원은 전산화가 이미 안정적으로 구축돼 있었고, 조기 예측과 진단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갖춰져 있었다.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한편, 연구 영역에서는 전산 알고리즘을 이용해 급성 신손상 조기 진단 시스템(early detection system)을 구현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고, 이 영역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당시 떠오르던 의료인공지능에의 관심으로 연결됐다”라고 말했다.
“의료인공지능센터가 무슨 일을 하냐고요?”
의료인공지능센터는 기본적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의료 분야에 적용하고 진단, 치료, 예방 및 의료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연구 및 개발하는 곳이다. 김세중 센터장이 일찍부터 의료인공지능에 가졌던 관심은 그가 2020년 조직의 첫 센터장으로 취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양한 분야가 융합되는 곳인 만큼 센터를 이끌 역할에는 의료와 인공지능 양쪽에 깊은 지식을 보유한 전문가가 필요했는데, 김세중 센터장은 그 적임자였다. 2003년 전산 시스템 ‘베스트케어’ 도입, 정밀 의료 서비스 ‘닥터앤서 1.0’ 개발 참여, ‘닥터앤서 2.0’ 총괄 등 디지털화에 앞장서 왔던 분당서울대병원은 이런 배경 속에서 한발 앞서 의료인공지능 전담 기관을 설립할 수 있었다.
센터 설립 이후 김세중 센터장의 연구도 본격적인 추진력을 얻었다. 2021년에는 김기표 인하대병원 신장내과 교수 등과 함께 인공 신경망 기반의 ‘급성 신손상 예측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두뇌의 정보처리 과정을 모방해 만든 AI 알고리즘인 인공 신경망이 함수 과정을 거쳐 새로운 값을 도출하는 방식이었다. 모델1은 환자 데이터가 입력되면 입원 기간(7일 이내) 동안 급성 신손상 발생 여부를 예측하는 구조로, 모델2는 입원 후 24시간, 48시간, 72시간 시점의 형철 크레아티닌 수치를 예측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분당서울대병원
이 같은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현재 의료인공지능센터는 실무 교수 및 운영위원 교수, 연구진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관련 전공 또는 경험이 있거나 서울대학교 융합기술대학원의 기술 인력이 함께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다양한 인재를 바탕으로 현재까지 수십 편의 연구 논문을 게재하고 특허를 출원했으며, 새로운 솔루션을 개발하기 위해 의료 솔루션 업체 이지케어텍, 네이버, 업스테이지 등 많은 기업과 협업하고 있다.
의료인공지능센터의 대표적인 연구로는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 감지에 도움이 되는 측면 뇌파 데이터의 자동화된 심층 신경망 분석(Journal of Clinical Sleep Medicine, 2023)’, ‘갑상선 관련 안와병증의 임상 활동 점수를 예측하기 위해 디지털 얼굴 이미지를 사용하는 머신러닝 지원 시스템(Scientific reports, 2022)’, ‘인공지능을 사용한 MRI 뇌 전이의 방사선 요법 후 실제 진행 분류(Neuro-Oncology Advances, 2021)’ 등이 있으며, ‘인공지능을 활용한 좌심실 비후 심장 초음파 영상의 분석 방법 및 장치’, ‘순환 신경망 예측 모델을 활용한 급성신장손상에 대한 임상의사결정 지원 시스템’ 등의 특허를 출원했다.
한편 분당서울대병원이 연구 개발을 주관하고 있는 AI 정밀의료 사업 ‘닥터앤서 2.0’도 주목할 만하다. ‘닥터앤서 2.0’은 지난 2021년부터 병원 30곳과 ICT 기업 19곳의 총 390여 명이 참여해 진행 중인 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데이터 및 인공지능에 기반해 폐암, 간질환 등 12개 질환의 진단, 예측, 치료를 지원하는 솔루션이 개발되고 있다.
현재의 진료는 환자 데이터를 의사가 판단해 처방하는 식이지만, 높은 진단 정확도와 함께 환자의 예후를 예측할 수 있다면 그 활용도는 무궁무진해질 가능성이 있다. ‘닥터앤서 2.0’ 사업을 통해 각 질환의 솔루션을 만들고 식약처 허가를 받는 개발 기간이 오는 12월 마무리된다. 이후부터 본격적인 사업화가 진행될 예정이다. 향후 솔루션이 도입됨에 따라 높은 수준의 AI 의료 서비스를 더 많은 병원에서 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인공지능의 미래, 핵심은 ‘교육’
연구 및 기술 개발 외에도 의료인공지능센터가 맡고 있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 바로 교육이다. 센터는 현재 의료인공지능 융합인재 양성 사업단이라는 과제에 참여해 의과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공지능을 미리 접하고, 관련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기술과 친숙해야 하는 영역인 만큼, 인공지능을 전공하는 공과대학생을 대상으로 의료와 인공지능을 접목한 커리큘럼도 선보이고 있다. 김세중 센터장은 “실제로 업무를 해보니 의료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물론이고, 관련 인력을 계속 양성하는 것 또한 중요했다”라고 언급했다.
교육과 관련한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인공지능센터의 성과는 각종 경진대회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2022년 성균관대학교가 주최하고 네이버 클라우드, 클로바가 주관한 ‘초거대 인공지능 API 의료분야 적용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인공지능센터는 의사국가고시 시험을 대비해 모의 환자를 대상으로 진료를 실습해 볼 수 있는 솔루션으로 우수상을 받았고, 제 1회 ‘젠에이아이 해커톤’에서 의료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하는 서비스 ‘SickGPT’로 대상을 수상했다. 최근 메타 라마(Llama) 경진대회 한국 지역예선에서 2등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이때 출품작은 SickGPT를 업그레이드한 버전으로 이미지 인식을 통해 실시간 의료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하는 솔루션이었다.
이처럼 경진대회 출전을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김세중 센터장은 “개발 중인 기술이 구현이 가능할지, 상용화가 가능할지를 파악할 수 있고, 타겟 수요자나 수익화 같은 니즈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또한 경진대회에서 받은 피드백을 통해 보완해야 할 부분을 개선할 수 있으며, 현장의 트렌드를 곧바로 흡수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게다가 피드백을 받으면 함께 참여한 연구원들의 집중력이 올라가고 관련 연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다”라고 설명했다.
생성형 AI? 메타버스? 의료인공지능의 화두
생성형 AI가 기술 분야와 의료 분야를 아울러 화두가 되고 있는 만큼, 김세중 센터장은 최근 이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센터장은 “챗GPT를 비롯한 LLM 모델이 기술과 의료 산업 전반에서 화두가 되고 있다. 활용될 수 있는 범위가 넓고 발전 속도도 매우 빠르다. 이것을 갖고 어떻게 실제로 의료 현장에 적용을 할까 하는 부분이 최근 주요 관심사다”라고 말했다.
센터가 생성형 AI를 활용해 현재 개발 중인 솔루션으로는 전자 의무기록 생성이 있다. 이전에는 이를 전공의가 직접 관리해야 했다. 김세중 센터장은 맞춤화된 생성형 AI 솔루션을 개발해 좀 더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료인공지능센터를 넘어 분당서울대병원 역시 AI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가령 분당서울대병원은 ‘건강정보 고속도로 플랫폼 구축 사업’의 주관 기관을 맡아 지난달 19일 개통식을 열었다. 이는 환자가 이전에 방문한 병원에 가지 않고도 ‘나의건강기록’ 앱을 통해 진료 이력, 건강검진 기록, 예방 접종 기록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앱이다.
또한 환자별 맞춤 답변을 제공하는 AI 의사 아바타 개발 역시 김세중 센터장이 주목하는 기술이다. 김세중 센터장은 “대학 병원에서 환자가 정기적으로 진료를 보는 경우 3, 4개월마다 방문하게 되는데, 진료를 보는 시간은 3~5분에 불과하다. 만약 그 동안 환자 진료를 보면서 조언한 내용과 작성한 논문 등 다양한 정보를 학습한 AI 아바타가 있다면, 환자가 진료를 보기 전 궁금한 걸 미리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의료 분야에는 정제된 최신 정보가 계속 등장하기 때문에 응용할 수 있는 영역이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신기술에 거부감은 없었을까? 김세중 센터장은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데 있어서는 오히려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장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생 때 공대 진학을 희망했을 정도로 새로운 기술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어느 정도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하면 어느 순간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그런 면에서 AI라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기 위해 초심자의 태도를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환자를 접하는 의사로서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프라이버시와 안전 검증 과제, 미래 환경에 대한 의지로 극복”
하지만 의료인공지능센터의 연구 개발 과정이 늘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운영 과정상의 과제는 여느 기업과 마찬가지지만, 의료 분야에서 특히 해결이 쉽지 않은 부분은 프라이버시와 안전 검증이다. 환자 개인의 건강 정보는 엄격하게 보호받아야 하고,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정보가 사용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 때문에 데이터에 기반한 솔루션을 개발할 때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데이터심의위원회(DRB) 등의 심의를 통과하고 가명화 작업을 거쳐야 한다.
또한 의료 분야는 항상 환자의 안전을 우선시하기에 신기술 적용에 굉장히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신기술이 기존 시스템보다 어떤 부분이 좋은지, 위험하지는 않은지를 충분히 검증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바로 적용해서 솔루션을 만드는 것과 그 안전성을 검증해야 한다는 과제가 늘 상충한다는 의미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분야인 만큼 실험 자체가 어렵고 충분히 검증된 상태로 기술 도입을 해야 하며, 기술 도입 속도가 신기술 출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인공지능센터가 경진대회에 자주 출전해 새로운 기술을 실험하는 배경에는 의료 분야의 이런 특성이 있다.
이처럼 많은 과제가 남아있지만,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인공지능센터가 내세우는 강점은 ‘젊은 병원’이라는 데 있다. 김세중 센터장은 “이미 의료 정보의 디지털 전환이 이뤄진 데다 상급종합병원 중 최근에 생겼기 때문에 젊고 도전적인 교수님들이 많다. 대규모 의료 디지털 데이터를 바탕으로 신기술을 활용하려는 열정과 의욕이 높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Foundry
김세중 센터장은 ‘사람을 내다보는 인공지능, 미래를 앞서가는 헬스케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데이터에 기반해 의료를 돕는 현재 AI의 기능을 넘어, 생체 신호를 비롯한 다양한 장치를 총망라해 사람 전체를 내다볼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앞으로 AI가 인간 의사를 완전히 대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지만, 환자의 다양한 의료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은 곧 올 것이라는 것이 그가 보는 미래다.
김 센터장은 “변화하는 미래를 미리 예측하고 그에 앞서 나가야 한다. 동시에 안전성과 효율성도 따져야 하고, 실제 진료 현장에 어떻게 녹일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앞으로도 연구뿐만 아니라 사업화 준비도 하며, 인력을 추가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교육 사업도 이어나갈 방침이다”라고 덧붙였다.
[email protected]
Read More from This Article: 의료 AI의 미래, 연구·개발·교육에서 찾다··· 분당서울대병원 김세중 의료인공지능센터장
Source: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