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당국이 엔비디아(Nvidia)의 첨단 AI 칩을 불법적으로 조달하려 한 혐의로 3명을 기소했다. 싱가포르인 2명과 중국인 1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최종 사용자 정보를 허위로 기재해 첨단 하드웨어를 구입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이 AI 기술 수출을 강력히 제재하고 있는 만큼 이번 사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AI 칩이 중국으로 유입되는 더 광범위한 네트워크가 존재할 가능성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이번 사건을 면밀히 조사 중이며,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수출 통제를 우회해 엔비디아 프로세서를 확보했는지를 파악하고 있다. 앞서 딥시크는 최신 AI 모델이 미국의 최첨단 기술과 견줄 만한 수준이라고 주장하며, 자사가 엔비디아의 A100 및 H800 칩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칩은 미국 제재로 인해 딥시크가 접근할 수 없는 모델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 부회장 겸 사장인 브래드 스미스는 지난달 27일 싱가포르와 다른 국가에 대한 첨단 칩 수출 제한이 오히려 글로벌 AI 경쟁에서 중국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싱가포르에서 진행 중인 조사
싱가포르 경찰은 지난달 26일 세관 당국과 협력해 단속을 벌인 후 9명을 체포하고 이번 사건과 관련된 혐의를 적용했다.
채널뉴스아시아(Channel News Asia)가 인용한 법원 문서에 따르면, 싱가포르 국적자인 아론 운 궈 지에(41)와 앨런 웨이 자오룬(49)은 서버의 최종 사용자를 허위로 표기해 벤더를 대상으로 ‘사기 공모’를 저지른 혐의를 받는다. 중국 국적자 리 밍(51)은 싱가포르에 등록된 회사인 ‘럭셔리에이트 유어 라이프(Luxuriate Your Life)’가 서버의 최종 수령자라고 허위 주장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이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최대 20년의 징역형이나 벌금형 또는 2가지 처벌을 모두 받을 수 있다.
이번 사건으로 싱가포르 정부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에베레스트 그룹(Everest Group)의 실무 책임자 니샨트 우두파는 “싱가포르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하며 미묘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보안을 강화해야 하지만, 동시에 정당한 기술 흐름을 촉진해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피해야 한다”라고 분석했다.
우두파는 이어 “싱가포르 경제에서는 중국이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중국 국적자가 주요 인재 공급원이고, 중국은 싱가포르 최대 교역 상대국이다. 이번 사건은 미국이 싱가포르를 2등급 국가로 분류한 결정을 정당화하는 사례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 수출 통제 조사
이번 체포는 싱가포르가 첨단 반도체의 환적 허브로 주목받으면서 그 역할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미국 당국은 딥시크가 싱가포르 내 제3자를 통해 엔비디아의 첨단 AI 칩을 확보하고 수출 통제를 우회했는지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법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첨단 AI 칩은 특별 허가 없이는 중국 최종 사용자에게 합법적으로 판매될 수 없다. 딥시크는 인터뷰와 연구 자료를 통해 미국이 접근을 제한하기 전 엔비디아 A100 및 H800 프로세서를 확보했다고 주장해 왔다.
또한 엔비디아의 싱가포르 매출이 2023년 23억 달러에서 회계연도 2025년 1월 기준 237억 달러로 급증한 것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엔비디아는 연간 매출 중 실제 싱가포르 기반 고객에게 배송된 비율은 2%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매출은 실제 칩 배송보다는 고객이 송장을 처리하는 위치를 기준이라고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 사장의 비판
마이크로소프트 사장 브래드 스미스는 바이든 행정부의 AI 기술 수출 통제를 비판하는 공개 서한을 발표했다. 그는 이런 규제가 의도치 않게 중국에 이익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미스는 ‘AI 확산에 관한 임시 최종 규칙(Interim Final AI Diffusion Rule)’이 싱가포르를 포함한 여러 전략적 시장으로의 수출을 제한함으로써 미국의 AI 리더십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규칙이 여러 국가를 ‘2등급’으로 분류하고 AI 데이터센터 확장을 양적으로 제한한다고 언급했다.
스미스는 “2등급 지위는 기업 성공에 필수적 요소인 고객 신뢰를 약화시키고 있다. 고객들은 미래에 필요한 AI 컴퓨팅 용량을 구매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라고 언급했다. 또한 이런 제한이 국가들로 하여금 대안을 찾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중국의 AI 부문에 이득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미칠 영향
싱가포르 칩 수출 우회 사건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비판은 급변하는 AI 환경 속에서 정부와 기술 기업들이 직면하고 있는 복잡한 과제를 보여준다. 미국 정책 입안자들은 첨단 기술이 잠재적 적대국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기업들은 이러한 수출 통제가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미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올해 전 세계적으로 AI 인프라 구축에 8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며, 그중 절반 이상이 미국 내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이런 투자 수준을 유지하려면 기술 서비스를 해외로 수출할 필요성이 있으며, 이를 위해 다른 국가에서도 AI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 분석가는 이런 긴장 상황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 구조를 재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베레스트 그룹의 우두파는 “제재를 통해 중국이 최첨단 반도체에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 하지만, 이는 자급자족 경쟁을 촉발해 더 다양하고 분산된 글로벌 혁신을 유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이미 화웨이와 SMIC 같은 중국 기업들은 국가 지원을 받아 기술 역량 향상에 막대하게 투자했으며, AI 칩 생산 효율성을 크게 개선했다. 다른 국가들이 미국 칩에 접근하지 못하게 되면, 기술적으로 최첨단 칩은 아닐지라도 중국과 한국 같은 국가의 대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최근 싱가포르 외교부 장관은 다자간 수출 통제 체제를 엄격히 시행하겠다고 밝히며 “탈세, 기만, 허위 신고”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진행 중인 수사는 글로벌 AI 칩 유통 문제가 심화되는 가운데 국가들과 기업들이 어떻게 입지를 다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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