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추가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반도체 제조 장비와 고대역폭 메모리의 수출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로 인해 공급망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번 규제는 한국, 이스라엘,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대만 등의 제조업체 장비에 수출 제한을 부과하지만, 일본과 네덜란드 기업에는 예외를 인정했다. 예외 대상에는 칩 제조 장비 업체인 일본 도쿄일렉트론, 네덜란드 ASML이 포함됐다. 이는 각국 정부와 미국 간의 광범위한 협상 결과로 알려졌다.
AI 칩에 필수인 고대역폭 메모리(HBM)는 현재 삼성,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이 생산하고 있다.
개정된 내용에 따르면 중국 기업 140곳이 추가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는 자체 반도체 생산을 통해 첨단 제조 기술을 확보하려는 중국의 역량을 겨낭한 조치다.
미 상무부 산업안보담당 차관 앨런 에스테베즈는 “동맹국 및 파트너와 지속적으로 대화하며 규제를 재평가 및 업데이트하고 있다. 이번 발표는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의 다음 단계를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규제 보완
이번 규제는 이전까지 대상이 아니었던 반도체 제조 장비 24가지를 포함한다.
테크인사이트의 반도체 부문 애널리스트 마니시 라왓은 “새 규제의 핵심 특징은 ‘해외직접생산품규칙(Foreign Direct Product Rule, FDPR)’이다. 이를 통해 미국 기술이 포함된 해외 생산 제품에 수출 통제를 부과할 수 있기에 규제 범위가 확대됐다”라고 설명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인공지능 전문가 그레고리 앨런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미국 장비 제조사들은 이러한 제재에 대응해 미국 외 지역에서의 생산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앨런은 “KLA 코퍼레이션과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Applied Materials)는 싱가포르 제조 시설의 대규모 확장을 약속했고, 램리서치(LAM Research)는 말레이시아에 최대 규모의 제조 시설을 건설했다”라고 언급했다.
램리서치는 웹사이트를 통해 새로 발표된 조치가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이 이전 예상과 대체로 일치할 것이라는 초기 평가가 나왔다고 밝혔다.
AI 칩 개발에 미치는 영향
이번 규제는 AI 칩 제조 분야를 대상으로 한다. 중국에서 이 기술이 군사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우려한 결과다.
특히 중국의 첨단 메모리 및 칩 제조 도구에 대한 접근을 제한해 핵심 반도체 기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아말감 인사이트의 CEO이자 수석 분석가인 박현은 “고성능 메모리와 칩 제조 장비를 수입할 수 없게 되면 중국 기반 벤더와 제조업체가 기본 칩 제조 장비의 공급을 중단하고 중국 외 공장의 생산 능력을 최대화하게 된다. 생산 능력이 최대치에 도달하면 아시아의 많은 지역이 일시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네덜란드와 일본 기업에 대한 면제 조치로 타격은 다소 완화됐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이번 조치로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한국, 대만은 이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미국과 중국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다.
박현은 특히 삼성의 HBM 칩 매출 중 상당 부분이 중국 시장에서 발생한다고 언급하며 “삼성은 AI 분야에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이제 중국이라는 최대 시장을 포기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라고 설명했다.
메모리 제조 업체들이 포함됐다는 점은 규제의 초점이 반도체 제조에서 AI 칩 생산에 필수적인 핵심 부품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며, 중국의 AI 역량 확대를 겨냥한 조치라고 라왓은 언급했다.
공급망 영향
삼성,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HBM과 첨단 칩 등 핵심 AI 부품에 대한 제한으로 AI 연구 개발 노력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됐다.
라왓은 “AI 학습과 추론에 관여하는 기술 기업은 이런 필수 부품을 확보하는 데 지연 및 비용 상승을 겪을 수 있다. 또한 칩 제조 장비에 대한 제한으로 서버와 PC 칩 부족이 심화돼 중국 제조 업체가 서버 및 고성능 시스템용 첨단 칩을 생산하기가 어려워지면 지연되거나 덜 발전된 노드에 의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규제로 인한 공급 제약은 칩 가격을 상승시켜 기술 기업의 이익률을 압박하거나 고객의 비용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국 시장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들은 공급망을 다각화하고, 대체 벤더를 찾으며 조달 전략을 조정해야 한다. 그러나 첨단 반도체의 대체품을 찾기는 비용이 많이 들고 어렵기 때문에 운영 비용이 더욱 증가할 수 있다.
레거시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의 잠재력
중국은 미국과 동맹국이 첨단 칩 및 제조 장비에의 제한을 강화함에 따라 반도체 자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분석가들은 중국이 AI 칩 설계 및 칩 제조 장비에서 엔비디아, ASML 등 업계 선도 기업에 뒤처져 있지만, 제한이 크게 적용되지 않는 레거시 노드 시장에서 영향력이 확대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레거시 반도체는 첨단 기술에 쓰이는 반도체보다 수준이 낮지만, 여전히 가전제품, 전기차 등에 활용되고 있다.
파리크 컨설팅 CEO 파리크 자인은 “중국은 높은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레거시 노드 시장에서 강자가 될 전망이다. 동시에 저전력의 첨단 노드는 미국이나 대만 같은 국가가 이끌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중국이 구세대 반도체 기술에서 자리를 굳히는 한편 첨단 칩 제조는 미국, 대만 등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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