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데이터센터용 시게이트(Seagate) 하드 드라이브를 구매한 일부 소비자가 사기를 당했다고 보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신품으로 구매한 드라이브가 이전에 수천 시간 동안 사용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독일 IT 매체 하이제(Heise)의 7일 보도에 따르면, 암호화폐 채굴장에서 사용됐던 시게이트 데이터센터용 하드 드라이브가 신품으로 둔갑해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중고 하드 드라이브는 유럽, 아시아, 북미 시장 전반에서 확인됐다. 일부 제품은 1만 5,000시간에서 5만 시간에 이르는 사용 기록이 있었지만, 내부 기록이 조작돼 미사용 제품처럼 보이도록 설정된 것으로 드러났다. 하이제는 200명 이상의 독자가 관련 문제를 제보했다고 전했다.
시게이트는 파운드리 산하 언론사 네트워크월드에 “시게이트는 이러한 드라이브를 리셀러에게 판매하거나 배포하지 않았다”라고 밝히면서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고객에게 공식 채널을 통해 구매를 확인하도록 촉구했다.
인도 뉴델리에 위치한 한 시게이트 채널 파트너는 익명을 요청하며 네트워크월드에 “이 문제에 대해 알고 있으며, 공식 파트너로서 매우 우려스럽다”라고 “고객은 우리를 신뢰하고 정품을 구매하지만, 이런 사건은 그 신뢰를 훼손한다. 가짜 제품이나 변조된 드라이브가 시장에 유입되면 시게이트뿐만 아니라 우리 같은 공식 리셀러들도 피해를 본다”라고 설명했다.
암호화폐와의 연관성: 중고 HDD가 시장에 유입된 방법
문제가 된 하드 드라이브는 암호화폐 채굴장에서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반적인 GPU 기반 채굴과 달리 저장 공간을 굉장히 많이 필요로 하는 치아(Chia) 암호화폐를 채굴하는 데 사용됐다. 치아 채굴이 한창이던 시기에는 하드 드라이브 수요가 급증했지만, 이후 수익성이 낮아지면서 많은 채굴장이 문을 닫았고, 이 과정에서 대량의 중고 드라이브가 중고 시장에 유입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드라이브는 내부 사용 기록이 초기화돼 신품처럼 보이도록 조작돼 소비자들에게 판매됐다.
이러한 사기 행위는 올 1월에 한 구매자가 시게이트의 데이터센터용 하드 드라이브 ‘엑소스(Exos)’를 구매 후 내부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하드 드라이브 제조업체는 드라이브의 사용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SMART’라는 데이터를 제공하는데, 해당 드라이브에선 SMART 관련 데이터가 초기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FARM(Field-Accessible Reliability Metrics, 하드 드라이브의 신뢰성과 상태를 측정하는 추가적인 진단 지표) 값을 분석한 결과 실제 사용 시간이 드러났다.
현재까지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영국, 일본,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200건 이상의 유사 사례가 보고됐다. 문제의 드라이브는 이베이(eBay) 등 서드파티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판매된 것으로 밝혀졌다.
시게이트 관계자는 “이러한 드라이브는 시게이트가 정식으로 판매한 신품이지만, 이후 중고 시장에서 다시 판매된 것으로 보인다”라며 “중고 시장 유통 과정에서 제품이 다시 신품처럼 포장돼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런 사기를 피하기 위해선 공식 유통사를 통해 하드 드라이브를 구매하는 것이 정품 여부를 확인하는 최선의 방법이며, 이를 통해 최종 고객도 제품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중고 시장의 투명성이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하드 드라이브를 리셀링하는 시스템 통합업체(SI)은 충분한 보증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를 구매하는 엔터프라이즈 기업들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이 중고 드라이브를 미처 인지하지 못한 채 사용하면 신뢰성 저하, 조기 고장, 데이터 손실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시게이트는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구매자도 보다 신중해야 한다. 기업은 스스로 IT 인프라에서 가짜 하드웨어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철저한 구매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시게이트는 네트워크월드에 “시게이트 보안팀도 각국 당국과 협력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라고 전하며, 만약 중고 제품을 신품으로 속여 판매하는 사례를 발견하면 [email protected]으로 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시게이트의 온라인 보증 확인 도구를 활용해 의심스러운 드라이브 또는 아예 판매자를 신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 영향과 후속 조치
이번 사건은 공급망 관리의 허점이 여전히 존재하며, 특히 중고 시장에서 정품과 중고 제품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컨설팅 기업 카운터포인트 리서치(Counterpoint Research)의 연구 및 파트너십 부문 부사장 닐 샤는 “어떤 기업이든 공급망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어렵다. 특히 중고 시장에서는 정품과 비정품이 섞이는 경우가 많아 감시가 어렵다”라며 “하드웨어의 내구성이 좋아지면서, 단순히 폐기되지 않고 중고 시장에서 다시 활용될 기회가 많아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공식 유통 경로를 거치지 않은 제품이 정식 판매망에 섞이는 문제가 발생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최근의 지정학적 요인도 이러한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샤는 “이러한 사태는 전체 공급망의 투명성 문제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라며 “스마트폰의 IMEI처럼 제조부터 판매까지 각 제품에 고유 식별자를 부여하는 방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라고 강조했다.
시게이트는 공식 핫라인이나 이메일을 통해 중고 제품을 신품으로 속여 판매하는 사례를 신고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으며, 현재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하이제에 따르면, 시게이트는 리셀러와 바로 협력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공급망 내에서 제품 검증을 위한 효과적인 기제가 부족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현재 대부분의 검증 프로세스는 업체 자체 인증과 업계 표준에 의존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테크아크(Techarc)의 설립자이자 수석 애널리스트인 파이살 카우사는 “현재 하드 드라이브의 공급망 및 검증 프로세스가 100% 투명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독립적인 제3자 검증 시스템이 필요하다. 단순히 서류와 실험실 테스트로 제품을 인증하는 것이 아니라, 심층적인 포렌식 분석까지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카우사는 이러한 검증 기관이 공급업체와 지나치게 긴밀한 관계를 맺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공급업체가 기존 검증 시스템과 강한 유착 관계를 맺고 있어 완전한 중립성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mail protected]
Read More from This Article: 데이터센터 시장에도 중고사기 기승··· 5만 시간 사용한 HDD가 ‘신품’으로 둔갑
Source: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