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발표한 ‘인공지능 확산에 대한 수출 통제 프레임워크’가 기술 업계의 논쟁을 불렀다. AI와 GPU 수출과 관련한 잠재적 국가 안보 위협을 억제하려는 목적인 이 프레임워크에 대해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등 기업은 혁신을 저해하고 중국에 시장 주도권을 넘겨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업계 관계자들의 경우 이 프레임워크가 미국과 글로벌 기술 생태계에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포레스터의 부사장이자 수석 분석가인 찰리 다이는 “첨단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제한해 미국 기업의 혁신 및 대안 개발을 촉진할 수 있지만, 동시에 미국 기업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떨어뜨리고 중국의 기술 발전을 가속화해 글로벌 기술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 미중 기술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규제는 미국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BIS)이 발표했으며, 대량 살상무기 개발이나 악의적 활동에 AI가 악용될 수 있다는 국가 안보 우려를 해결하려는 의도가 있다. 이를 위해 AI 기술 수출에 엄격한 라이선스 요건을 부과한다.
논란 중인 규제 내용
BIS의 잠정 최종 규칙(IFR)은 무기 개발과 인공일반지능(AGI) 등 고위험 분야에서의 오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AI 기술과 GPU에 대한 광범위한 글로벌 수출 제한을 의무화했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는 이 프레임워크가 당초 목적을 벗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해당 프레임워크가 개별 사용 사례나 물량이 아닌, 상대국에 배치된 총 컴퓨팅 파워를 기준으로 미국 기업이 수출할 수 있는 GPU 수를 제한하는 라이선스 시스템을 수립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다.
또한 규정에 따르면 유럽 국가 대부분과 일부 아시아 국가 등 신뢰할 수 있는 20개 핵심국에만 수출이 허용된다는 점도 지적됐다. 인도, 싱가포르, 베트남, 멕시코 등 미국의 주요 파트너 국가와 발트해 연안 공화국, 체코 등 유럽의 소규모 국가는 수출 제한 조치를 받게 된다.
다만 최근 아랍에미리트가 중국과의 관계를 제한한 후 G42-마이크로소프트 거래를 통해 첨단 AI 기술 접근 권한을 얻은 사례처럼, 현지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는 특정 보안 요구사항을 충족해 ‘검증된 최종 사용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기업에 미칠 영향
이번 프레임워크는 기업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됐다. 클라우드 서비스나 AI 개발을 위해 GPU에 의존하는 기업은 비용 증가, 공급망 문제, 첨단 기술 접근 지연에 직면할 수 있다.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의 경우 엄격한 보안 요구사항에 맞춰 데이터센터를 개조하는 데 따른 규정 준수 비용이 추가될 수 있다.
포레스터의 다이는 “수출 통제 프레임워크로 인해 GPU 공급망이 중단되면 프로젝트 지연 및 운영 비용 증가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기업이 대체 기술에 투자해야 할 경우 경쟁력과 수익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가 “복잡한 규정을 준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고객이 대안을 찾으면서 시장 점유율 손실 위험을 겪고, 규제 준수에 자원을 투입하느라 혁신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일부는 이 프레임워크가 국제 파트너십에 부담을 주고 글로벌 AI 협력 관계를 저해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오라클은 블로그 게시물을 통해 이 프레임워크가 고위험 활동에 집중하는 대신 클라우드, 칩, AI 분야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저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라클의 수석 부사장인 켄 글루엑은 “의회가 2,800억 달러 규모의 칩스법(CHIPS Act)으로 이룬 성과가 무너지고 있다. 이 규제로 인해 미국 기업의 글로벌 칩 시장이 80% 축소되고 중국 경쟁사에게 넘어갈 수 있다. 알리바바, 화웨이, 텐센트, SMIC 발전을 위한 수출 통제 프레임워크라고 불러야 더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급망 혼란
분석가들은 이번 정책이 혁신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생태계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에버레스트 그룹의 파트너인 유갈 조시는 “중국의 최첨단 AI 연구에서 배울 기회를 잃는 셈이다. 또한 이미 취약한 공급망에 부담을 줘 중국 기업들이 미국 이외의 국가와 제휴를 맺고 클라우드, AI, 양자 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시장 주도권에 도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조시는 하드웨어에 대한 높은 규정 준수 비용과 제약이 기업, 클라우드 업체, 스타트업 모두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산업군을 나누면 결국 솔루션의 품질이 떨어지게 되고, 장기적으로 글로벌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정책은 UVEU(Universal Validated End Users)와 LPP(Low Processing Performance)와 같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 클라우드 업체에 복잡한 규제를 부과한다. 여기에는 라이선스, 사용량 제한, 연방정부 위험 및 인증 관리 프로그램 높은 영향 수준(FedRAMP High)과 같은 미국 중심 표준을 의무적으로 준수해야 한다는 조건이 포함된다.
오라클은 이 같은 포괄적 규칙이 글로벌 인프라에 대한 기존 투자를 고려한 결과인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대규모 상업용 데이터센터는 20년간 계속 구축돼 왔다. 이 규칙은 소버린 클라우드와 이전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은 계약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라고 말했다.
오라클은 또한 GPU 우회에 대한 우려를 일축하며, “대규모 GPU가 배치된 데이터센터는 너무 많은 전력을 소비해서 화성에서도 보일 정도다. 눈앞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술 기업의 의견
오라클이 강력하게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동안, 다른 기업은 보다 신중하게 오라클 입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주요 기업을 대표하는 정보기술산업협의회(ITI)는 이번 규제가 미국 기업의 국제적 컴퓨팅 시스템 판매 능력에 임의적인 제한을 가해 글로벌 경쟁사들에게 경쟁 우위를 넘겨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 주요 반도체 기업을 대표하는 반도체산업협회(SIA)는 프레임워크의 범위와 협의 부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협회는 성명을 통해 “SIA와 회원사들은 국가 안보를 지키려는 미국 정부의 노력에 동참한다”라면서도 “산업계의 의견 수렴 없이 개발된 이 잠재적 규제의 전례 없는 범위와 복잡성을 깊이 우려하고 있다. 이는 반도체 기술과 첨단 AI 시스템에서 미국의 리더십과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라고 밝혔다.
SIA는 더 나아가 바이든 행정부에 접근 방식을 재고할 것을 촉구했다. SIA는 “지금 같은 과도기에, 산업계와의 의미 있는 협의 없이 정책을 급격하게 추진하는 것에 대해 신중히 경고한다. 협의 계획이 없다면, 정부와 산업계 리더들이 글로벌 파트너국과 함께 이 중요한 문제를 신중히 다룰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행정부가 새로운 규제안을 발표하거나 정책 결정 과정을 차기 트럼프 행정부에 넘길 것을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분석가들은 이 프레임워크가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 독립적인 AI 생태계 개발을 촉진하는 등 더 광범위한 지정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에버레스트 그룹의 실무 이사인 아비셱 센굽타는 “AI가 더 노골적으로 국가주의를 표방하고 외교 정책과 연계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이미 진행 중인 AI 주권 이니셔티브를 가속화할 수 있다. 폐쇄형과 오픈소스 논쟁의 유사물로 생각하면 된다”라고 설명하며, AI 발전을 국가 및 외교 정책 의제와 더욱 밀착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센굽타는 미국이 AI 외교를 통해 새로운 동맹국을 끌어들일 수 있지만, 새롭게 등장하는 글로벌 AI 대안으로 인해 기존 동맹국을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미국 기반 AI 제품의 경쟁력에 심각한 해로운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예상 밖의 결과 초래
센굽타는 중국의 딥시크(DeepSeek)를 예로 들며, 고성능 칩 접근 제한이 적대적 국가들로 하여금 더 효율적인 알고리즘을 혁신하도록 밀어붙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딥시크는 중국 시장에서 제한된 엔비디아의 최첨단 제품보다 성능이 낮은 H800 칩에 의존했다. 그 결과는? 챗GPT-4와 라마 3.1과 같은 유명 업계 모델을 여러 벤치마크에서 능가하면서도 훈련 비용이 550만 달러에 불과한 더 컴퓨팅 효율적인 LLM이 탄생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규제 지지자들은 적대국에 의한 오용을 막기 위해 AI 수출 통제가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행정부는 AI와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의 비전이 이번 규제 제정의 원동력이 됐다고 지목했다.
비영리 단체인 ‘책임 있는 혁신을 위한 미국인(Americans for Responsible Innovation)’의 대표 브래드 카슨은 성명을 통해 “AI에 있어 적대국에 강경히 맞서야 한다. 중국은 AI 기술을 손에 넣기 위해 모든 허점을 이용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기술이 중국과 그 군사 동맹국에게 흘러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빅테크 기업이 새로운 프레임워크에 대해 불평할 수 있지만, 결국 미국 적대 세력의 AI 기술 발전을 막는 것은 국가 안보의 필수 과제다”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새 프레임워크는 국방, 통신, 금융과 같은 핵심 분야에서 적절한 통제가 없을 경우 취약점을 야기할 수 있는 신흥 기술을 규정했다.
하지만 오라클과 같이 비판적 입장을 보인 기업은 이 프레임워크가 미국의 기술 리더십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오라클은 “과도한 규제로 혁신을 질식시키고 글로벌 AI 시장을 경쟁국의 손에 넘기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이 정책을 지지하는 미국 하원 중국 공산당 전략경쟁 특별위원회는 지나 레이먼도 상무부 장관에게 보다 엄격한 지침을 시행할 것을 촉구했다. 존 물레나르 위원장과 라자 크리슈나무르티 위원은 레이먼도 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 중요한 조치를 진행할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라고 밝혔다.
업계의 엇갈린 의견처럼, 인공지능 확산에 대한 수출 통제 프레임워크는 국가 안보 보호와 기술 혁신 촉진 사이의 긴장을 보여준다. 기술 대기업이 명확성과 협의를 요구하는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는 접근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압박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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