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이 대통령이던 1990년대다. 사람들이 인터넷에 접속하려 시도하던 시절이다. 당시에는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요 기술 강자였다. 이 두 회사가 PC 시장을 워낙 탄탄하게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윈텔’의 아성은 그야말로 굳건했다. 윈텔이 무너질 미래를 예측했다면 비웃음을 샀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지난 2일 인텔은 팻 겔싱어 CEO의 즉각적 ‘퇴임’를 발표했다. 회사에서는 그가 은퇴했다고 말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아마도 없을 터다. 회사의 이사회는 실패를 반복하는 회생 시도에 인내심을 잃었고, 결국 겔싱어 CEO는 강제로 밀려났다.
거의 4년간 CEO로서 인텔을 이끌었던 겔싱어는 이사회로부터 은퇴(retire)와 해고(fired)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밀려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겔싱어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사실 인텔의 내리막길이 시작된 시점은 2007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왜 콕 집어 2007년일까? 애플이 삼성 칩을 탑재한 아이폰을 출시한 해이기 때문이다. 아이폰에 ‘인텔 인사이드’가 적용될 수 있었다.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가 이를 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텔은 거래를 망쳤다. 나중에서 드러났지만 이때부터 기술 마니아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PC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인텔은 유의미한 스마트폰 칩을 개발한 적이 없다.)
인텔이 엑스스케일과 아톰을 비롯한 여러 스마트폰용 칩 제품군을 보유하기는 했다. 하지만 최근까지 인텔은 기존 PC 및 서버 시장에만 집중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술 비즈니스에서 이러한 단기적 사고는 치명적이었다. 인텔이 느리고 확실한 쇠퇴를 거듭하기 시작했다.
패착은 또 있다. 인텔은 첨단 칩 제조에 중요한 기술인 극자외선 노광(EUV) 기술을 도입하는 데 더디게 대처했다. 이러한 지연으로 인해 AMD와 대만 반도체 제조 회사(TSMC)와 같은 라이벌이 칩 생산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최근에는 2020년에 애플이 인텔을 버리고 자체 ARM 기반 칩을 개발해 맥에 적용하기도 했다. 인텔에게 뼈아픈 사건이었다.
그 사이 AMD는 2017년 젠(Zen) 아키텍처를 도입해 서버용 라이젠 프로세서와 에픽 칩을 출시했다. 결과는 숫자가 말한다. AMD의 데스크톱 시장 점유율은 2017년 3분기 17.1%에서 2024년 3분기 28.7%로 증가했다. 에픽 서버용 프로세서는 2024년 3분기 24.2%의 유닛 점유율과 33.9%의 매출 점유율을 기록할 정도로 시장을 맹렬하게 잠식했다.
그리고 진짜 킬러가 등장했다. 인텔이 예견하지 못했던 또 다른 혁명이 출현한 것이다. AI와 엔비디아다. 사실, 인텔이 AI의 부상을 놓쳤다고 해서 인텔을 탓하기란 어렵다. 이를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엔비디아는 AI가 성장을 가속화하기 훨씬 전부터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하이엔드 게임과 암호화폐의 부상으로 1조 달러 규모의 회사로 성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반면 인텔은? 이 칩 제조업체의 GPU 시장 점유율은 2023년 2분기 2%에서 2024년 2분기에는 0%로 떨어졌고, 같은 기간 경쟁사인 엔비디아의 점유율은 80%에서 88%로 상승했다.
인텔의 주가는 2021년 2월 겔싱어가 취임한 이후 약 60% 하락했다. 지난 10월, 인텔은 56년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분기 순손실인 166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같은 분기에 인텔은 1992년 이후 처음으로 주주 배당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우지수에서 퇴출됐다. 모욕의 마지막 방점과 같은 사건이었다.
일부 언론은 겔싱어의 은퇴를 “놀랍다”고 표현했다. 그리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여름부터 이 일을 예상해온 필자는 결코 천재도 아니다.
겔싱어가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오하이오에 200억 달러 규모의 칩 제조 시설을 설립하는 계획과 유럽 사업 확장 계획을 발표했다. 그의 계획 덕분에 인텔은 ‘어쩌면’ 미국 내 칩 제조 건설을 지원하기 위한 칩스(CHIPS) 법 덕분에 수십억 달러의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도널드 J.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칩스 법에 대해 불만을 표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는 대만 TSMC와 같은 외국 기업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에 새로운 반도체 파운드리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수십억 달러가 마술처럼 창출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겔싱어가 떠난 후 인텔은 임시 공동 CEO로 최고재무책임자(CFO) 데이비드 진스너와 최고제품책임자 미셸 존스턴 홀트하우스를 임명했다. 이사회는 또 “부지런하고 신속하게” 영구적인 후임자를 찾기 위해 검색 위원회를 구성했다. 필자라면 진작에 새 CEO를 찾는 작업을 시작했을 것 같다.
솔직히 인텔은 끝났다고 본다. 내일 당장 무너지는 일은 없겠지만 훨씬 더 막대한 정부 구제금융이 없다면 인텔이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경로가 점점 더 좁아지는 듯 보인다.
인텔이라는 이름은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 조차도 모르는 일이다. 퀄컴이 인텔을 인수하게 된다면 결정권 쥐게 될 수 있다. 영광의 시절에 인텔을 번영의 길로 이끌었던 앤디 그로브가 무덤에서 탄식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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